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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5> 겉과 포장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과 핵심을 파악해야
  • 기사등록 2021-02-01 11:44:24
  • 기사수정 2021-02-01 11: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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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그는 18세기, 엄격한 계급 질서가 지배하던 신분사회에서 살다 간 인물이다. 원래는 귀족 집안 출신인데,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녀서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교유했고, 특히 많은 여성들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 이 남자는 여성들과 교유할 때 세 가지 원칙은 꼭 지켰다. 


사귀는 여성이 귀족인가 비천한 신분인가를 따지지 않았고, 여성의 나이에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못생긴 여자도 우아한 미모의 여자와 똑같이 대우했다. 한 마디로, 그는 여성을 신분의 귀천, 나이의 많고 적음, 외모의 미추와 상관없이 대접하고 사귄, 평등주의적 신념을 지닌 남자였다.


이렇게 묘사된 사람은 어떤 인물이라고 짐작하는가? 아마도 그를 시대를 앞질러 간 자유분방한 성격의 평등주의자라고 추측할 것이다. 고루한 관점에서라면 몰라도, 성품도 꽤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소탈한 인격에 열린 인간관을 지닌 듯이 보이고, 실제로 만나 본다면 상당한 호감을 느끼게 될 듯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바로 카사노바(Giacomo Casanova)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엽색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양 역사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그가 유명한 호색한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그런데, 절제된 어휘와 우호적인 관점에서 위와 같이 서술해 놓으니, 카사노바는 그리 고약한 인물로 비치지 않는다.


▲지아코모 카사노바(1725~1798)/위키피디아


같은 내용이지만 이를 좀 더 사실적으로 서술한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여성이라고 하면, 귀족이든 하녀든, 젊든 늙든, 예쁘든 못생기든 가리지 않고 접근하여 방탕하게 놀아났던 희대의 플레이보이다.”


이 표현을 대하면, 그는 말 그대로 ‘치마만 둘렀다 하면 눈이 뒤집히는 저질의 호색한’으로 떠오른다. 똑같은 사실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식으로 포장하는가에 따라 이처럼 천지 차이가 나는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과장 광고가 문제된다. 어떤 상품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그 장점이나 특징을 부풀려서 광고하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런 과장 광고는 일종의 속임수다. 요즘 이런 과장 광고나 과대 포장, 가짜 뉴스가 우리 사회에 난무하고 있다. 


정론이라는 이름으로 독설과 비방을 일삼는다. 민주화니 정의 구현이니 하는 표어를 내걸고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갈등만 증폭시킨다. 그런가 하면,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으로 힘없는 개인을 주저 없이 음해하기도 한다. 


허황하면 할수록, 거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장이나 과대 포장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 속이 비어 있음을 들키면 안 되니까 현란한 치장이나 그럴듯한 수사가 동원되게 마련이다.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해 내놓으면 그런 외형에 현혹되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허상을 실상이나 진실로 여기기 쉽다. 분명히, 사물의 실상(reality)은 외양에 나타난 그대로가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와 상당히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데도 말이다. 


모든 세상사에는 껍데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물론이고 핵심, 참모습 혹은 진면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 포장이나 형식, 눈에 비치는 현상적인 측면과 아울러 내용이나 본질적인 측면이 있다. 말 그대로의 진짜와 그럴싸해도 실제로는 아닌 ‘사이비(似而非)’가 엄연히 공존한다. 


우리의 현실세계에는 사실적 주장도 있지만 가짜 뉴스나 허황한 음모론 또한 떡 하니 버티고 있지 않는가. 모든 게 현란한 속도로 변화하고 정보와 상품이 홍수처럼 교류되는 지금의 정보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거의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적인 쟁점이나 해법이든지, 어떠한 사람의 인격(도덕성)이나 능력이든지, 일상의 다양한 현상이든지, 지엽 말단이 아니라 핵심을 파악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화려한 외피나 교묘한 수사, 요란한 포장에 현혹되지 말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해야 한다.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거품이나 포장, 가식적 외양을 본질로 착각하는 데서 발생하는 손실과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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