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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3>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 기사등록 2020-12-20 22:55:02
  • 기사수정 2020-12-20 23: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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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로 유명한 파스칼은 "만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전 세계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사소하고 우연적인 요소가 크나큰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현생인류의 까마득한 원조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 7백만 년 전까지 꼬리가 있었다. 지금 우리 인간에게는 꼬리뼈가 남아 있는데, 이는 아득한 옛날에 사람('사람'이라는 명칭이 썩 적합하지는 않다)에게도 꼬리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어쨌거나, 오늘 호모사피엔스인 우리에게는 꼬리가 전연 없다. 이 점에는 예외가 없다. 그런데, 참으로 엉뚱한 상상이지만, 만약 인간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인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을까?

 

우선 우리가 익히 아는 신화나 전설은 그 내용이 시작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도 아마 이렇게 묘사되었을 듯하다. 예컨대, “주피터는 준수하고 남성미가 넘치는 얼굴과 체격을 갖고 있었다. 꼬리로 말하면 대단히 길었고 그 길이에 알맞게 굵었으며 부숭부숭한 털이 나 있었는데, 그 색깔은 눈이 부시는 황금빛이었다.”라고 말이다. 


여신이나 요정에 대한 묘사 역시 달라졌을 것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우아한 얼굴에 금발, 그리고 무지개색의 가늘고 요염함이 넘치는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 꼬리를 우아하게 살짝 비틀기만 하면 모든 신들은 욕정에 불타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는 식으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에 대해서도 “뭉툭하면서도 신령스러움이 느껴지는 적당한 크기의 꼬리를 한 환웅”이라고 그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웅은 그 꼬리가 길어 백두산을 99바퀴 감고도 9자가 남을 정도로 무한히 길었다."고 했을 수도 있다.

 

인종의 분류도 상당히 다양해졌을 것이다. 꼬리의 길이, 굵기, 색깔, 흔들 때 그려지는 곡선의 모양 등을 기준으로 우등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세분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이론과 분류학이 생겨났을 것이다.

 

한낱 꼬리의 형태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식민지화할 때의 정당한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다. 부숭부숭하고 길고 두꺼운 꼬리를 지닌 민족은, 만일 특정 민족이 꼬리가 몽땅하고 털도 별로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런 특성 자체가 완벽에 가까운 꼬리를 지닌 민족에게서 마땅히 지배 받으라는 신의 섭리가 표현된 것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약소국 유린이나 침략의 정당화 작업을 위해 국가적으로 아마도 미상학(尾相學)이라고 명명함직한 학문 분야를 집중 육성할 수도 있을 듯하다.―영어로는 휴먼테이롤로지(human-tailology)쯤 될 것 같다.

 

이런 관점이 이데올로기처럼 판치는 시대라면, 신하가 왕에게 “폐하, 조상대대로 믿음직하게 굵고 길며 용맹한 얼룩무늬로 빛나는 꼬리를 한,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우리 선진 문명국이 어찌 몽땅하고 쥐꼬리처럼 가는 꼬리를 지닌 그 열등한 족속들과 대등하게 국교를 맺고 교류까지 한대서야 어불성설이 아니겠나이까? 통촉하옵소서!”라고 우국충정에서(!) 진언하는 경우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미인대회 선발 기준에서도 꼬리가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당당히 추가될 것이다. 세계미인대회에서 선발된 미인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꼬리에 대해 완벽한 균형과 색깔을 갖추었다고 격찬해요. 또 가장 우아하게 흔들어댈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묻곤 합니다. 


저는 제 꼬리의 매력은 결국 저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분출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꼬리를 흔들거나 빗과 화장품으로 꼬리를 다듬을 때 저는 마치 성직자들이 종교 의식을 치르듯이 정말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요. 한순간도 그런 자세를 흐트러뜨린 적이 없답니다.(호호홋…)”

 

사회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준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길고 두껍고 털이 탐스럽게 나고 색깔도 아름다운 꼬리를 물려받은 족속들은 이런 요소에서 나쁜 콤비네이션을 한 인간들에 대해 선민의식과 우월감을 갖고 자기들만 못한(?) 인간들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 무리들 중에는 자기는 꼬리의 형태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대단히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식을 지닌 것처럼 우회적으로 내세우려는 처세의 달인도 등장할 것이다.

 

꼬리는 배우자 선택에서도 반드시 확인하게 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게 모두 만족스럽더라도 꼬리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거나 반대하는 경우도 적잖이 발생할 것이다. 극성스런 어머니는 자녀에게 “그래, 네가 말하는 그 남자(여자)는 얼굴도 잘 생기고 마음씨도 착하다는 건 안다. 돈도 많고 말이야. 학력도 좋고…. 


그렇지만 그 꼬리가 뭐냐? 남들 앞에서 어디 내 사위(며느리)라고 보일 수나 있겠냐? 짧은 데다 가늘기는 무슨 생쥐 꼬리처럼 해 갖고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런 꼬릴 한 남자(여자)를 사위(며느리)로 도저히 맞지 못하겠다.”고 호통 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마 항공사 스튜어디스 선발에서도 중요한 기준으로서 추가, 명시될 것이다. “꼬리는 (1)길이가 80센티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고, (2)평균 굵기가 반경 3센티미터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며, (3)색깔은 칙칙하거나 불규칙한 얼룩무늬가 없어야 함.”하는 식으로 말이다.

 

꼬리 때문에 자살하는 젊은이도 속출할 것이다. “인간의 꼬리는 순전히 타고 나는 것, 전연 바꿀 수 없는 것인데, 도대체 한 인간을 단지 꼬리의 길이나 굵기, 색깔로 평가하다니 말이 되는가? 나는 그 동안 깊은 지식을 쌓고 좋은 품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어. 전문지식이나 책임감, 인격으로 말하면 난 정말 자신이 있어. 


그런데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려니 어디서나 최종 선발과정에서 꼬리 때문에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선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해 내게 책임을 묻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평가기준을 들이대는 사회에서 나는 살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아! 친구야, 나는 이 세상을 하직하려네. 누구나 부러워할 좋은 꼬리를 갖고 태어난 네가 부러울 뿐이다."라는 한 맺힌 유서를 남기고서.

 

잠재의식 중심의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론도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형될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단지 잠재된 성적 충동의 표현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성적 충동 및 꼬리의 형태와 관련된 잠재의식의 발현이라고 좀 더 길게 설명할 것이다. 성적 충동이라는 인간 행동의 일원적 요소가 이원적 요소 중의 하나로 격하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만민 평등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인정받는 세계인권선언문도 표현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누구도 짓밟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인간을 인종, 성별, 종교, 꼬리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함은 부당하며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어차피 한번 엽기적 상상력을 동원해본 것일 뿐이기는 하지만, 인간에게 꼬리가 없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꼬리 이상의 것이 아닌데도 그런 걸로 인간 자체를 평가한다거나 다른 사람과 계층, 인종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는 일이 인간에게는 흔하디흔하다. 


인간은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존재이니까. 희극 중의 희극이면서 비극 중의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살이는 고해(苦海)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복잡다단한데, 만약 꼬리까지 달렸더라면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와 번뇌는 분명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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