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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준교수의 귀농일기> 나이 70에 '사과 마이스터 최고과정' 면접장에 서다
  • 기사등록 2020-12-01 23:01:01
  • 기사수정 2020-12-01 23: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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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에 易地思之 (역지사지)가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란 말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당해 봐야 안다는 말이다.

지난 주 화요일 사과 마이스터 최고과정 면접이 있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 10시 30분까지 면접장소로  오라고 해서 늦으면 수험생 입장에서 큰 일 난다고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면접생들이 이미 많이 대기하고 있다. 수험표 같은 건 없었지만  대기장소에 앉아 있으려니 교수 재직 중 연례행사로 치뤘던 입시생 면접이 생각났다.

나도 이렇게 수험생이 되어 대기하고 있으니까 떨리는데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면접장에 와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대학입시 수험생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나처럼 긴장한 면접생은 없는거 같았다. 이미 응시자격에 어느정도 제한울 둬 막말로 사과재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 '뭐 나를 떨어뜨릴라고?'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평균적으로 이 사람들보다 재배이력이 적어 다른 기준(귀농 교육, 사과재배 기술 교육 수강) 등으로 간단간당 때워 걱정이 됐다. 허걱! '면접이라고 한  5분 정도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들어간 사람들 면접 시간이 평균  20분이 넘는다. 아이고 사과재배 기술 일반에 대해 물어보나 보다. 

어쩌지, 책 좀 보고 올걸 그랬나? 가만 있어 봐라. 300평 당 비료 적정 시비량이 얼마지? 사과나무 전정 유형은? 갈수기 때 적정 관수량과 주기는?  토양 산성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석회를 뿌리나? 참 그럼 붕산은 어떨 때 뿌리지? 뭐 주워 들은 사과 재배 지식에 대한 단편 생각들이 막 머리속을 어지럽히며 점점 더 안절부절해졌다.

아마 그 때 <사과재배의 일반기술>이란 책 들고 같으면 쪽 팔리던 말던 열심히 뒤져 봤을꺼다. 예전 생각이 났다. 면접장소에 들어가는데 대기실에서 뭔지 모를 책 같은 걸 열심히 뒤져보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아니 지금와서 뭘 또 공부하겠다고 저러나하고 비웃었는데 내가 당해보니 그 학생의 심중을 이해 하겠다.


드디어 내 면접 호출. 예전에 면접생이 들어오면서 인사를 정중하게 해 나도 문 열자마자 면접관을 향해 인사하고 앞에 있는 의자에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올려 놓고 정좌!  면접관 중 한 사람이 이 과정 주관 기관인  농업기술센터에서 온 사람인데 나를 알아보고 눈 인사하며 "손이 왜 그렇게 되셨어요?" 하고 묻는다.

일단 아이스브레이킹이 되며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나머지 두 사람 면접관은 근처 대학의 농업 분야 교수들 같았다. 질문은 첫 순서로 예의 지원동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우선 공손하게 정답대로 뭐 일천한 사과재배 지식을 더 늘리려고 지원했다고 좋은 말만 늘어 놓고, 마지막으로 합격시켜 주신다면 최고령 학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동정심 유발 멘트를 했다.

입에 발린 뻔한 얘기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내가 최고령 학생 운운하니 면접관 중 한 사람이 응시원서를 들여다 본다. 앗싸, 내 나이 확인하는거 같으니 늙은이라고 좀 봐주겠네. 면접 보러 온 대부분이 30~50대 사이인거 같았다. 

그 다음 질문들은 뭐 재배 수종이 어떤거 어떤거 있냐고 물어보고, 그 중 가장 재배가 어려운 품종이 뭐고 왜 그런지 설명해보라고 해 그정돈 읊을 수 있어 잘 설명했다. 한 면접관이 우리나라  사과 유통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여기서 누가 중요 결정권자인지에  대해 설명하라고 해 이 과정에서 생산자가 아무 결정권이 없는 참상을 그동안 쌓였던 울분과 함께 좀 지루하게 설명한거 같아 빨리 끊었다. 

나머지 질문도 대충 잘 대답한 것 같아 만족한 마음으로 면접장 나오면서 다시 꾸벅 인사.  20명 정원에 26명 지원했다 하니 여기서 떨어지면 정말 개망신이다! 아니 뭐 자격과 실력으로 봐선 내가 떨어지는게 당연할거 같다. 
최근 골치아픈 세상을 더 심란하게 만든 사람 둘, 서로 처지를 바꿔 한 번 상대방을 고려해 볼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쓰잘 데 없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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