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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평화연구원 원장





갑 때문에 따가운 햇빛을 가릴 수가 없어 얼굴만 잔뜩 찌푸렸다.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아있는 교도관은 쿨쿨 졸고 있어 도움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른 좌석에 앉아 나를 힐끔거리던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차창 커튼을 쳐주신다. 그저 미소로 고마움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광주교도소 수감중 서울 고법에 증인으로 호송 중에 겪은 이날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대학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에 전념해야 할 내가 죄수 신분으로 수갑 찬 채 고속버스에 앉아있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취직 잘 된다는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고생하시는 홀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소박한 꿈은 그날의 사태를 겪으면서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해 5월 21일, 부처님 오신날 오후 1시. 시위대 앞 줄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던 나는 갑작스런 총성이 울리자 본능적으로 뒤돌아 도망쳤다. 


달리는 중에도 설마 공포탄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옆에서 뛰던 사람이 비명을 울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자 공포감 때문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면서 전일빌딩까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총성이 멈춘 후 광장을 내다보니 수많은 시민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나는 주먹으로 콘크리트 벽을 두들겨 대면서 통곡했다. “이게 나라란 말인가. 어떻게 국민을 백주 대낮에 집단 발포하여 학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 무심하기만 했다.

그해 12월 9일, 나는 가톨릭농민회원 4명과 함께 광주 미(美)문화원에 방화했다. 5월 27일 새벽에 최후의 시민군과 함께 죽지못한 죄의식 때문에 고민하다가 이들의 죽음과 위대한 항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하던 날에 맞추어 광주미문화원을 공격한 것이다. 


부산미문화원 방화보다 2년 앞서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반미항쟁이었다. 이로 인해 광주교도소에서 2년 6개월을 살다 만기출소했다. 그동안 박관현 열사의 죽음으로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고, 국기 하강식에 불참하고 대든다는 이유로 교도관에게 끌려가 수갑을 차고 공중에 매달린 채 몽둥이 찜질을 당하기도 했다.

출소후 정상용 선배가 조직한 전남민청에 소속되어 5.18항쟁 관련 투쟁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전두환 군사정권이 살벌한 공포정치를 펴나가던 상황이어서 극심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금남로에 있던 가톨릭센터에서 농성하다가 백골단에게 머리카락을 잡혀 끌려나와 동부경찰서에서 무수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한밤중에 짚차에 실려 첩첩산중에 내동댕이 쳐져 밤새 걸어오기도 했다.

대학 졸업후 상경하여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다가 위장폐업한 회사에 맞서 노조위원장으로 투쟁하다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고, 구사대 폭력배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으로 쫓겨난 언론인들의 모임인 ‘80년 해직언론인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최일남 회장과 함께  해직언론인 원상회복에 관한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러는 와중에서 당시 전교조 해직교사인 아내와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사당동 달동네 반지하방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서울생활을 접고 광주에 내려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가 광주광역시청에 취업하였고, 이후 25년동안 대변인실에서 5.18 영상홍보작업에 매진하였다.


5.18관련 영상물과 홍보물을 만들어 전국 대도시 전광판에 방영했고, 5.18기념문화센터 소장으로 재임중에는 ‘힌츠페터 사진전’과 ‘5.18영창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공직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전국을 일주하면서 경치좋은 해변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따뜻한 커피도 함께 나누며 주말에 낚시를 즐기는 게 소박한 꿈이었는데 또다시 5월 문제로 법안을 발의하여 국회에 쫓아다니고 급기야 농성투쟁까지 이르게 됐다.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겼듯이 모든 게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접고 있다. 이번 투쟁이 내 인생의 마지막 5월 투쟁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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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1-24 16: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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