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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1>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게 먼저다
  • 기사등록 2020-11-06 17:04:53
  • 기사수정 2020-11-06 17: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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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추전국시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2천3백년전 이야기다. 명의(名醫)  편작(扁鵲)이 채(蔡)나라 환공(桓公)을 만났다. 편작이 보니 환공의 얼굴에 병색이 있었다. 이에 편작이 “공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장차 깊어질까 걱정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환공은 “내겐 병 같은 건 없소.”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로부터 열흘 쯤 지난 다음 편작이 다시 환공을 만났다. “공의 병이 이제 피부 속까지 이르렀습니다. 속히 치료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공은 편작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물리쳤다. 다시 약 열흘이 지나서 편작은 환공을 만났다. 그는 “공의 병이 장과 위에까지 이르렀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환공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또 열흘이 경과했다. 편작은 멀리서 환공을 바라보더니 발길을 돌려 마치 도망하듯이 자리를 떴다. 궁금히 여긴 환공은 사람을 시켜 편작이 그렇게 행동한 까닭을 물어 보았다. 편작이 말했다. “병이 아직 피부에 있을 때는 찜질로 치료하면 됩니다. 피부 속에 있을 때는 침을 놓아 고칠 수 있고요. 그리고 그게 장과 위에 있을 경우에는 약을 복용하면 치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골수까지 퍼지면 아무런 치료 방법도 없습니다. 공의 병은 지금 골수까지 이른 지경입니다.” 

 

그로부터 닷새 정도 지난 다음 환공은 몸에 이상을 느껴 편작을 찾았다. 그러나 그 때는 편작이 이미 진(秦)나라로 간 다음이었다. 환공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죽고 말았다.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하더라도 얼굴만 쳐다보고 단번에 병이 있는지, 또 그 병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읽고 당장 품게 되는 의문이다. 어차피 2천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이고, 한비자가 강조하려는 것도 이런 ‘정확한 진단 가능성’ 문제가 아니다. 


그가 이야기 끝에 결론으로 덧붙인 말도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이뤄지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는 것이니까 무슨 문제든지 더 커지고 심화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미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아내지 못하도록 문제를 키우는 경우야 세상사에 참으로 흔하지 않은가.

 

고사(故事) 속 환공의 태도에서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채의 환공은 불세출의 명의인 편작을 만났고, 또 그에게서 여러 차례 병에 대한 경고를 들었지만 결국 아무런 손도 써보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이른바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데 탁월했다. 자신의 장점은 물론이고 약점과 문제점까지 제 마음 편한 대로 보지 않고 보다 객관적으로 성찰했다. 조직이나 사회제도 역시 한 개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대로 된 조직, 명실상부한 선진사회일수록 부닥친 문제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구체적 매뉴얼과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발생되는 문제 전반에 관한 사회적, 공적 인식 시스템도 항상 원활히 작동한다. 

 

체계가 올바로 서있지 않은 집단이나 후진 사회는 이런 면에서 상당히 취약하다. 아니, 한 집단이나 국가에 대해 ‘후진’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뒤떨어진 집단, 사회, 국가일수록 문제의 발생이나 심화 원인에서 해결책까지 잘못을 몇몇 개인이나 집단 탓으로 돌린다. 영악한 정치인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중에게 영합하는 정략적 발언이나 쏟아내는 게 고작이다. 

 

물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자각, 위기의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위기 상황이 극복되는 건 아니다. 대체로 사회적, 국가적인 문제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서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문제 자체가 발생했음을,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경우 이런 상태는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 그 병이 얼마나 위중한지 깨닫지 못하면서, 아니, 정확한 진단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면서 병을 치료하려는 것과 같다. 

 

요즘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한 뒤숭숭한 분위기에다 졸속으로 마련된 ‘부동산 임대차 3법’에 따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는 불가항력적 재난에 가까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임대차 3법’의 후유증은 그야말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필요한 문제에 조잡한 발상으로 성급하게 대응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주택임대차 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할 때부터 많은 전문가들은 합당한 대안 마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과 정부가 제시하는 방안에 문제점이 적지 않음을 누차 지적했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이나 쓴 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입법화부터 덜컥 추진했다. 더욱 한심한 점은 지금 시점에 와서 정부는 엄연한 사실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을 짐짓 외면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고지식하게 들어보면, 새로 채택한 주택 임대차 정책이나 법률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뿐 아니라 문제 있다고 거론되는 부분들은 결단코 정책의 본질적 측면이 아니다. 이런 판단은 참으로 안이하다고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문제를 다각적으로 세심하게 검토하여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 이미 저지른 잘못이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비슷한 오류를 되풀이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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