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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상담심리 전문가

前MBC통일방송협력단장 

 



'대물림'이란 말을 쓰면 사람들은 “아! 유전되는 거 말이지요?”라고 바꾸어 말한다. 하지만 '유전'이란 표현은  과학적 용어라서 그런지 건조한 느낌이 들고 “대물림”이 오히려 의미심장한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상담심리사인 나는 내담자(來談者)들과 “삶”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10여년의 경륜이 쌓이면서 이제는 “대물림”에 대한 심각함과 기묘한 신비감을 넘어 ‘경외감’까지 깊게 체감한다.  “대물림”은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 속에서도 쉽게 변화되지 않는 모든 생명체의 “정체성∙항상성”을 유지해 나가는 경탄스러운 자연 현상이라는 확신을 지니게 된 것이다. 

 

 ““human(인류-포유류-사람-인간)”을 명명하는 많은 용어 중에 필자는 “인간”이란 용어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수많은 생명체가 각자 독립되어 존재하고 있는 현상을 감안하여 “개체생명체”라는 말도 선호하는 편이므로 두 가지 용어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물림”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들 인간에게 “대물림”이란 과연 무엇일까? 좀 더 부연하자면, “윗대 인간을 닮을 수밖에 없는 인간 생명체의 가시적, 비가시적 현상”이다.  가깝거나 먼 친지나 자녀들을 만났을 때  아빠를 닮았느니, 엄마를 닮았느니 하며 ‘닮음의 여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적 본능이다. 

 

 우리들 인간의 전체 모양새는 항상 선대의 인간을 닮는 “대물림”의 현상이고, 좀 더 미시적인 기준으로 살펴보면, 한 사람의 외모는 조상까지 포함한 그 씨족과 외족의 외모를 닮는다. 닮아 있는 편차가 적으면 “꼭 닮았다” 하고, 편차가 크면 “닮은 데가 있다”라고 한다. 


내가 상담에서 막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비가시적인 “정서적 대물림”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보고 ‘성격이 아빠 닮아서 좋다, 안 좋다’거나, ‘엄마처럼 예민하다, 무디다‘라고 평가하는 말들은 “대물림 된 정서적 양태”를 단순히 표현하는 말이다. 


그 정서적 양태에는 크거나 작게 “보이지 않는 상처”, 곧 “고통의 또아리”가 있어서, 내담자의 ’심리적 ‘안녕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고통을 완화시키거나 치유하면, 보다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믿음 또한 연구실험을 통해 과학적 개연성을 확보한 몇몇의 심리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 사람의 “정서적 대물림”도 외모처럼 부모의 한 쪽을 많이 닮기도 하고 적게 닮기도 한다. 

아버지가 과묵한 정서의 소유자라면 아들도 그렇기 쉽다. 수다스런 엄마를 닮았다면 아들이라도 수다스런 남자가 될 수 있다. 딸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내담자들의 “정서적 대물림”을 체감하면서 내 자신의 “정서적 대물림”도 더욱 깊게 체감하고 있다. 아버지는 과묵하셨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는 성실하고 부지런하셨다. 자녀에 대한 깊은 정감을 지니셨지만 표현을 잘 못하셨다. 아내에 대한 애정 표현도 언어가 아닌 태도나 물건으로 대신하셨다. 


어머니는 학식, 교양, 인품이라는 가치를 중히 여기시며 그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지니셨지만 아버지처럼 깊은 정감을 지닌 분은 아니셨다. 아무리 급해도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만큼 느긋하셨다. 아버지는 ‘유명세’를 부러워하지 않으셨다. 내게는 ‘유명세’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큰 형은 명예욕이 컸지만 작은 형이나 나는 별로 없다. 

 

부부생활 40년 차가 되어 가지만 나는 지금도 아내를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아마 6.25 전후 ‘동란동이’ 세대에게는 아주 드문 “대물림 현상”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다섯 살 아래인 아내는 나를 늘 “여보~~!”라고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럴 때마다 내심으로는 닭살이 돋는 듯하다. 나의 부모님이 서로를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불가항력적인 부부 호칭의 “정서적 대물림”이다. 나는 지금도 아내를 보고 “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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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0-27 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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