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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권 / 국가전략 의사결정의 책임은 민간 정치 지도부에 있다
  • 기사등록 2020-10-25 13:22:35
  • 기사수정 2020-10-26 14: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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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前국가위기관리학회장

 




 난 9월 하순 북한군이 서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우리 공무원을 총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은 국민들에게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남겼다. 그간 믿고 지지했던 이들이 자국민 보호도 못하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묻고, 현 정부의 위기대응 역량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참변사태의 위기관리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대응조치 취약점을 냉철히 분석하고 차후 동일한 시행착오를 방지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보겠다. 


 먼저, 수집된 정보의 올바른 활용이다. 정확한 정보는 국가 위기관리 정책수립과 의사결정의 선결요건이다. 정부와 군은 실종 당일 북측의 경고통신, 실종된 이씨를 북측이 발견한 사실, 대통령 서면보고 후 총살 및 시신소각 등 상황을 실시간(Realtime) 대에 파악하고도 아무런 대응·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는 청와대가 군 정보를 불신했거나 모든 가능성을 열거해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빚은 패착으로 추정된다. 또한 누군가 이념적·정치적 이유 때문에 제공된 정보를 왜곡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의 고액 채무 등을 들어 자진월북으로 추정하는 일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 이외의 문제로 정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가위기관리에 치명상이다. 


 둘째, 상황판단 회의 지연 개최이다. 모든 위기대응의 첫 단추는 위기상황 평가와 대응전략수립이다. 청와대와 군은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에서 발견 사실을 인지하고도 즉시 상황판단 회의를 열지 않고, 이씨가 총살 및 시신 훼손 이후 안보관계 장관회의, NSC를 뒷북 개최했다. 


국가위기 대응 컨트롤 타워의 무감각과 무지로 대응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대통령과 참모의 정보 미(未)공유와 상황인식 불일치는 곧 대응실패를 의미한다. 대통령의 24시간은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취침시간대 보고를 꺼리는 참모의 전근대적 사고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셋째, 국가 통수권자의 위기관리 리더십 부재이다. 위기시 국가지도자는 상황판단을 기초로 대응방향과 전략결정, 국내외 대응수단의 동원 그리고 국민통합을 주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22일 서면보고를 받고 23일 대면보고받기까지 14시간 동안 상황판단회의, NSC회의 소집·주재도 하지 않고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통수권자의 대북위기 대응방향과 지침 그리고 의사결정이 절실한 시점에 군 장성 진급·보직 신고식과 아카펠라 공연관람 등 일정을 평시처럼 소화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또한 북측에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요구 보다 북측이 보내 온 통지문과 김정은의 연설문에 반색하며 희색만면하는 여권 행태는 국민에게 실망과 화만 돋게 할 뿐이다. 


 넷째, 올바른 문민통제의 개념 부재이다. 국가전략 의사결정의 책임은 군 지휘부가 아닌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민간 정치 지도부에 있다. 즉 대통령, 국방부, 국회(국방위)가 군에 대응방향과 지침을 시달하는 것이 문민통제 개념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권은 대응실패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자 그 책임을 군에게 전가하는 모양새는 자신들이 무능을 셀프 입증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주권·영토·국민보호는 화려한 수사(修辭)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군사·외교력이 배합된 교섭적 위기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번 사태에서 국가위기관리체계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컨트롤 타워 이해상관자(stakeholder)들의 반성과 치열한 격물치지(格物致知) 그리고 실천이 절실하다. 역사학자 E. H. 카는 과거에 매달리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야권도 대안 없는 비판과 반대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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