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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방일보 편집인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떼~한민국, 짝짝  짝짝짝

'2002년~' 하면 모두가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한일월드컵이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기록, 꿈 속에서나 가능했던 월드컵 4 강, 그 꿈을 현실로 이룬 사건이다.

'월드컵' 하면 히딩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입성해서 히딩크가 던진 한 마디. " 한국축구는 기술은 괜찮은데 체력이 부족하다."

뭐라고? 체력이 부족하다고? 우리가 일본과 경기하는 모습을 못 보셨나? 기술은 몰라도 체력만은 자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당시 어느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부동의 진리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후 히딩크가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어? 그 말이 맞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딩크 이전의 축구는 공격선수는 공격만 했다. 수비선수는 수비만 했다. 그런데 히딩크는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요구했다. 소위 올 라운드 플레이다.

선수들은 이전보다 몇배를 더 뛰어야했다. 당연히 체력이 딸렸다. 이어서 실시된 체력강화 훈련도 상식을 뛰어 넘는다.우리는 한계를 넘나드는 강행군만이 체력을 강화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폐타이어를 끌고 온종일 산야를 누볐다.

히딩크는 적절한 압박과 이완을 조합했다. 그야말로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초창기 히딩크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우리는 경기마다 5 대 0 으로 지는 히딩크를 보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히딩크는 개의치 않았다. 약팀만 골라 5 대 0 으로 이기면 무슨 의미가 있나?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을 강팀을 상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당시 히딩크 감독이 아니었더라도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아마도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답할것이다. 그러기에 "4강신화" 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 아닌가!

돌이켜 보면, 히딩크와 같은 선각자가 우리 역사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청나라를 다녀 와, 실용과 실학의 문물을 열하일기(熱河日記)로 남겼던 연암 박지원(朴趾源), 그 때에 그 실용을 우리가 받아들였더라면 우리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고 35년간 식민지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계 최초의 철갑선(鐵甲船)을 만들어 일본의 목선(木船)을 격파했던 이순신장군, 쉬운 한글을 만들어 문맹없는 나라를 만든 세종대왕, 반도체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 시대에 반도체만이 미래의 먹거리라 판단하고 거기에 사활을 걸었던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

이분들의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음속을 뛰어 넘는 속도로 변화해 가고 있다. 시대적 사고도 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 가야 한다. 따라서 조직의 리더가 수구적 사고에 갖혀 있으면 그 조직의 미래가 암담하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과거지향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미래가 불행해진다. 박지성 선수가 포루투갈 전에서 환상적인 결승 골을 넣는 장면을 보고 또 본다. 그러면서 오대영 히딩크를 생각한다.

딩크 형! 세상이 왜 이리 시끄러운가요? 여ㆍ야, 보수ㆍ진보의 벽을 넘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정치계의 히딩크는 어디 있나요?

한 쪽에서는 집 값이 수 억 씩 오른다고 좋아서 떵떵거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장사가 안 돼 폐업하는 비명이 하늘을 찌르는, 이 난국을 극복할 경제계의 히딩크는 어디 있는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이 희극의 시대에 사람들의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종교다운 종교를 구현할 종교계의 히딩크는 또 어디 있는가?

과거의 구태를 벗어 던지고 100년을 내다보는 선구자적 사고전환이 요구되는 시기다. 오늘의 난국을 극복 해 나갈 이 시대의 히딩크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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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0-16 17: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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