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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0> 권위에 맹종하는 인간
  • 기사등록 2020-10-16 17:13:12
  • 기사수정 2020-10-16 17: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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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심리학의 역사에 유명한 실험 중 하나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 있다. 1960년대 예일대학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실시했던 실험이다. 이 실험은 한 개인이 권위로부터 나오는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에 얼마나 순순히 복종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실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우선, 실험 참가자(피실험자)는 실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선생의 역할을 맡게 된다. 다른 실험 참가자는 칸막이 뒤에서 학생 역할을 맡아 문제를 푼다.


선생 역의 피실험자는 실험 진행자로부터 학생 역의 실험 참가자가 문제를 풀면서 틀린 답을 말할 때 마다 전기 충격을 16볼트씩 올리라는 지시를 받는다(물론 실험 진행자와 학생 역은 사전에 마련된 각본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실제 전기충격은 전혀 받지 않는다). 오직 선생 역의 피실험자만이 실험 목적과 내용을 모르는 상태다. 

 

선생 역의 참가자는 실험 진행자가 지시한 대로 학생이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의 수준을 올렸고 그 때마다 학생은 괴로운 척하는 연기를 했다. 피실험자들은 대부분 몇 번 정도 전기충격을 주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실험 진행자한테 얘기했다. 

 

그런데 실험 진행자가 “그 정도의 전압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피실험자의 약 3분의 2(40명 중 26명)가 450볼트의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버튼을 눌렀다. 450볼트의 전기라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임에도 그랬다.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이 실험에서 450볼트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왜 전기충격을 계속 가했느냐는 질문에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실험 진행자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것이 일종의 ‘권위’로 작용하여, 피실험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 셈이다.

 

알려진 바로는, 원숭이조차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눌러서 다른 원숭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버튼을 오랫동안 누르지 않는다. 심지어, 버튼을 누른 결과로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가 튀어나오는 경우에도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대단히 충격적인 이야기다. 부당한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점에서 상당수의(약 3분의 2에 해당) 사람은 어쩌면 원숭이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 되니까.

 

목에 칼이 겨누어지더라도 부당한 명령이나 요구는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는 바른 말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많다.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이 대통령에게도 싫은 소리, 직언을 하겠다고 공언했다는 보도도 간혹 접한다. 

 

중책을 맡은 사람이라면 부당한 명령, 지시, 요구를 거부함은 물론이고 그릇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밀그램의 실험이 보여주는 인간 심리의 실상은 이런 우리의 희망이나 주문과는 상당히 멀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기 목에 칼이 겨누어지는 그런 험악한 상황이 아니어도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른다. 별로 강압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은 타인에 대해 폭력적 경향을 나타낼 수 있다. 


적절히 정당화할 수 있는 핑계거리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리고 상당히 강력한 그 핑계는 바로 ‘권위’라고 말할 수 있다. 높은 사람이나 상부 조직의 명령이나 지시라는 기댈 만한 ‘권위’만 있으면 얼마든지 비이성적인 행위도 자행한다. 심지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른다. 

 

인간에게 잠재된 이런 끔찍한 가학성이나 뻔뻔스런 도덕 불감증을 완벽하게 없애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다만 일종의 예방책을 몇 가지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인간은 권위에 지극히 취약한 심리구조를 지닌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별로 합당하지 않은 명령, 지시, 요구에도 잘 따름을 인간 행위를 지배하는 엄연한 심리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그 어느 생명체보다도 고상하고 착한 존재라는 자기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조직 위계의 상층에 속한 사람, 이른바 지도자급인 경우, 하위자들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명령이나 지시라도 그 부당함을 지적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상위자의 진정으로 열린 자세,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기탄없는 의견 교환의 기회 없이는 합당하지 않은 정책이나 그릇된 의사 결정이 절대로 저절로 걸러지지 않는다.

 

끝으로, 내가 관련된 일이 옳지 않거나 불합리한 방향으로 진행된 경우, 내가 그 일에 개재되어 있지만 책임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권위’에 기댄 비겁한 자기 정당화임을 자각해야 한다. 결국 인간은 낙관적인 휴머니스트들이 미화하고 기대하는 만큼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자기합리화에 능한 영악스런 비겁자에 가깝다. 씁쓸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이런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부끄럽고 비극적인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그것도 국가적 차원에서. 

 

최근에 우리나라의 행정부 고위층이나 국회의원들이 엉성한 아이디어들을 국가 정책이나 법률로 성급하게 제시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대체로 이런 행태는 상위자(또는 상위자라고 여기는 존재)의 권위에 앞질러 맹종하려는 데서 나온다. 


국가 지도층에 이런 맹종적 행태가 흔하다는 사실은 나라의 내일을 생각할 때 크게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부정적 행태의 주인공들은 그런 퇴행성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참으로 지금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이 국가 지도층을 불안스런 눈길로 바라봐야 하는 위태로운 국면에 놓여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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