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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 깊은 울림으로 다가 온 호주의 현충일 추모행사
  • 기사등록 2020-09-23 17:45:59
  • 기사수정 2020-10-03 17: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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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방일보 편집인





주는 해마다 4월 15일을 '안작 데이( Anzac Day)' 로 기념한다. 안작은 Australia and New Ziland Army Corps의 약자로 우리의 현충일인 셈이다.

1915년 4월 15일, 1차 대전이 한창이던 그때,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은 터키 갈리폴리 반도 상륙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나 연합군은 이 전투에서 15,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크게 패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 전투 참전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4월 15일 새벽4시에 추모 행사를 갖는다.

왜 새벽 4시일까? 그 당시 작전을 개시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은 2차 대전,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 등에서 전사한 용사들도 함께 추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마침 호주 골드 코스트를 여행하던 중 안작 데이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아래 사진 참조)

4월 15일 정확히 새벽 4시, 수많은 예비역, 현역, 경찰, 민간 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가지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그 이른 새벽에도 거리에 나와 이들을 환영하고 축하 꽃다발을 걸어준다. 행진이 끝나고 이어서 기념식이 거행된다.

기념식장은 전사자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는 해변의 공원인데, 그 동상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전사자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헌화하는 순서다. 전사자 이름을 부르면 그 유족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꽃다발을 헌화한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까지 다양하다. 족히 1시간 이상 걸리는 듯 하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엄숙하여 진한 감동을 준다. 한국전쟁 당시 호주군이 싸웠던 경기도 가평의 전투상황도 소개하고 전사한 병사의 이름을 불렀다.


                                               안작데이 행사장에서 거수 경례하는 필자


슴이 찡했다. 참으로 고맙고 미안했다. 호주는 6.25 전쟁 당시 8,407 명이 참전하여 339명이 전사했다. 호주 국민들은 안작 데이에 안작 비스켓을 먹는다. 당시 전투에서 병사들이 먹었던 그 빵을 기억하려고 지금도 안작 데이 날에는 안작 비스켓을 만들어 먹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안작데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6ㆍ25전쟁이 새벽 4시에 일어 났다는 사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필자가 군에 있을 때는 6월 25일마다 새벽 4시에 비상을 걸고 진지 투입훈련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안작행사를 보면서 우리도 6.25 행사는 6월 25일 새벽 4시에 거행하면 어떨까? 새벽 4시에는 민방공 싸이렌을 1분간 울린다면? 장소는 북한군 탱크가 밀어 닥쳤던 미아리 고개도 좋을듯 하다. 기왕이면 참석자들 모두가 소리 높여 '단장의 미아리 고개' 를 합창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 보았다.

우리도 일부 단체에서 병사들이 먹었던 주먹밥 먹기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온 국민들이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주먹밥을 먹지는 않는다. 우선 장병들이, 공무원들이, 학생들이 먼저 나서 6월 25일 점심 한 끼라도 주먹밥 먹는 전통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호주 현충일의 또다른 특징은 각 지방 도시들이 따로따로 기념행사를 갖는 것이다. 자연히 그 지방출신 전사자들을 엄숙하게 추모하게 된다.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고 행사의 의미도 피부에 와 닿는 배경이다. 서울에서 많은 사람이 한 데 모여 행사 위주로 치러지는 우리의 현충일 기념식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전사자를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살아 남은 참전자를 예우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참전용사들이 예우받는 모습을 볼 때 전쟁이 나면 젊은 청년들이 너도 나도 전쟁터로 뛰어들 것 아닌가!

분명 전쟁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평시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땅에 묻는다. 전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땅에 묻는다. 평시에 사람을 한 명 죽이면 엄한 처벌을 받지만, 전시에는 많은 사람을 죽인 공로로 훈장을 받는다.


아무리 선한 전쟁도 악한 평화만 못하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쟁을 기억하고, 전사자를 추모하고, 살아 남은 참전 용사들이 예우받는 보훈풍토가 정착될 때 전쟁의 유령은 우리 곁을 얼씬거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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