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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8> 진정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것
  • 기사등록 2020-09-04 15:25:26
  • 기사수정 2020-09-04 16: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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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한신(韓信)은 대략 2,100년 쯤 전의 중국인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의하면, 그는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였으나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 


끼니조차 제대로 못 이을 형편이어서 남창(南昌)의 정장(亭長, 오늘날로 말하면 파출소 소장쯤에 해당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다 쫓겨나기도 했다. 심지어 강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에게서 밥을 얻어먹은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한신을 거지에다 무능력자로 취급했다. 어느 날 한신을 아니꼽게 보던 백정이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네가 허우대가 멀쩡하고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사실은 겁쟁이일 뿐이란 걸 난 안다. 네가 정말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나를 찔러봐라! 그런 용기가 없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가든가…”


그러자 한신은 백정의 얼굴을 한 번 빤히 쳐다본 다음 아무 말 없이 몸을 구부려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갔다. 여기에서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남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는 모욕을 당하다’는 뜻이다.


                                                                                


한신은 이 일화 때문에 실제 그가 지닌 재능에 비해 여러 차례 무시당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초(楚)나라의 항량(項梁)과 항우(項羽)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않자 한왕(漢王) 유방(劉邦)의 진영에 가담하여 대장군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결국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한(漢)나라의 황제로 등극하자 한신은 고향인 초(楚)나라의 왕으로 임명된다. 한신은 금의환향하면서 그 자신이 불우한 시절에 밥을 먹여 준 빨래터의 여인에게 천금으로 은혜를 갚았다. 그리고 그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도록 모욕했던 백정에게는 치안 담당 벼슬을 내렸다.(사진=한신(韓信, ?-BC 196 )                                                

                                                                                                                                                                                                

한신은 참으로 한 시대의 영웅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과하지욕’의 일화는 그가 혈기왕성한 청년기 초반에 거의 성인(聖人) 수준의 참을성과 진정한 자존심을 갖췄음을 말해준다. 만일 그가 그 백정을 상대로 한바탕 칼부림을 했더라면 화끈한 분풀이야 할 수 있었겠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 개인이든 가정처럼 작은 집단이든 국가처럼 커다란 집단이든 간에, 사람들은 자존심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런 자존심을 절대시하는 가치관은 동서고금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모욕이나 업신여김을 당하면 그 자존심에 금이 가고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 간에 사이가 멀어지는 개인적인 일에서 국가 간에 존망을 걸고 벌이는 전쟁까지 그 원인은 자존심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양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결투도 결국은 이런 자존심 싸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 조차 결투 끝에 심한 부상으로 생을 짧게 마감한 걸 보면 인간은 자존심 때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개인적인 사소한 갈등은 물론이고 인종이나 종교 간의 테러, 국가 간의 전쟁 문제까지 험악하고 비상식인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이런 모든 다툼과 문제의 저변에는 대체로 자존심의 문제가 깔려 있다.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자존심 등등….


모욕이나 치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인간은 여간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을 견뎌내지도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치욕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가슴깊이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진=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러시아의 대문호)     

                                                                                                                                                                                                                                                                                  

과연 자존심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정도로 지고(至高)의 가치를 지녔을까? 모든 인간은 제각기 절대적인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명제 앞에서 이런 물음은 새삼스럽고 다소 엉뚱해 보인다. 우리의 교육, 문화, 경제활동 등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드높이기 위한 것임이 너무도 분명해 보이니까.


얼핏 쉽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타자의 자존심을 존중하고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고 고양하고 일은 간단치 않다. 우선 남의 자존심을 함부로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 실천 지침으로는 남의 인격과 생각, 믿음,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관용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한다. 즉흥적, 저돌적으로 대응함은 진정으로 자존심을 회복하거나 드높이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자존심의 문제는 그야말로 인류 전체가 성찰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과제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자존심 지키기는 이성적 존재이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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