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정호 / 재임중 실패사례도 공개한 대통령 기념관을 보고 싶다
  • 기사등록 2020-08-31 16:02:44
  • 기사수정 2020-08-31 16:59:35
기사수정

전 국방일보 편집인





  초급 간부 시절이던 1970년대초,  필자는 모범용사 산업시찰 준비차 출장신고를 했다. 1주일간 100 여명의 용사들이 먹을 곳, 잠 잘 곳 등을 미리 탐방하고, 예약하는 임무였다.

신고를 마치고 출발하는 나에게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광주에선 광주식당이 제일 크고
진주에 가면 진주식당이 제일 크다."

돌이켜보면, 두메산골 시골뜨기인 나에게 이 임무는 벅찬게 사실이었다. 촌놈 눈에는 서울의 모든 식당이 으리으리하고, 웬만한 여관도 호텔처럼 호화찬란해 보였으니 말이다.

광주역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타고 광주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차를 몰았다.  얼마후  '광주식당'  간판이 선명한 건물 앞에 나를 내려 주었다. 당연히 꾀 크고 좋아 보였다. "아!  좋네!"


광주의 모든 식당을 알 길 없는 나는 쾌히 100 명분 점심을 예약했다. 메뉴는 돼지불고기. 그때만 해도 고기먹는 날은 조상님 제삿날 뿐 아니었던가? 용사들에게 같은 값이면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후 용사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터지고 말았다. 우선 장소가 100 명이 들어가기엔 너무 좁았다. 답사할 때는 쾌 크고 넓어 보였는데 말이다. 결국 100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없어 2교대로 나누어 먹어야만 했다.

"사장님, 빨리빨리요!" 일정 때문에 식사를 재촉하는 우리에게 식당주인은 덜 익은 돼지고기를 내 놓았던 모양이다. 고의야 아니었겠지만 저녁에 숙소에 도착하니 수십명의 용사들이 배가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여기저기 약국을 뛰어다니며 약을 사다 먹였다. 그래도 건장한 젊은이들이었기에 큰 탈 없이 지나가긴 했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일을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그러나 장렬한 실패없이 장엄한 성공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젊은 시절 그때의 실패 경험은 살아 오면서 매사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습관을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장엄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장렬한 실수 없이 공직을 마치는 계기가 되었다.

에디슨은 2000번의 실험 끝에 전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친구가 "자네는 결국 1999번을 실패했네 그려 " 하고 웃자, 에디슨은 " 아니야, 전기를 만들 수 없는 1999 가지 방법을 알아낸거지" 라고 대답했다.

실패학의 대가인 일본의 하타무라 요타로는 "인간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의 성공확율은 0.3%"라고 말했다. 1000건을 시도하면 불과 3건만 성공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실패, 두 번 실패에 좌절하고 주저앉는 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따지고 보면, 수많은 선조들의 실패, 수많은 민중들의 실수 위에 이 시대의 우리가 있는 것이리라.

서점에는 저명 인사들의 자서전이 홍수를 이룬다. 대부분이 자신의 성공담, 자화자찬 일색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분들은 너무나 위대해서 전혀 실패가 없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실수와 실패는 묻어 버리고 성공사례만 골라 담아 낸 것일까?

우리 사회에도 실패의 소중한 교훈을 인정하는 풍조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살아 오면서 경험한 이러이러한 실패를 진솔하게 고백한 실패 자서전을 보고싶다. 국립 서울대학교에 국내외 실패 사례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실패학과'라는 과(科)가 신설되면 좋겠다.

재임중 정책 실패가 가감 없이 나열되어 있는 대통령 기념관도 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1999번의 실패를 열아홉 번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0-08-31 16:02:44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