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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용 몇 가지 핵심 물자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 1년여가 지났다. 필자는 지난해 이맘때 정부와 언론계의 많은 질문에 답하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의견을 개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당시 느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국민의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일본 피했지만 중국 위협에 직면....원자재 공급선 다변화 추진해야


   일본이라는 특수성이 국민감정을 자극했기에 더 그랬겠지만, 여러 이유로 대학에서 반도체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고무적이었다. 국민적 관심을 동력으로 한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상징적인 것은 과거 불산가스 누출 사고로 인해 제재 기한이 끝났음에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재개하지 못하던 불산 제조 중소기업이 다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사실이다.

심각한 대일 무역 역조의 큰 요인 중 하나였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년 이상 각종 육성 정책을 폈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진전이 더 큰 느낌이다. 물론 이를 실제로 이뤄 낸 주인공은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산업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현장의 기술자와 경영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노력과 별개로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진단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단기간에 국산화를 완료했다고 주목받은 불산의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의 1년 불산 사용량은 2000억 원어치쯤 된다. 큰 시장은 아니지만, 없으면 100조원 짜리 반도체 산업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니 매우 중요한 소재다.

불산 생산 업체들이 2000억 원어치를 납품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생산에 필요한 투자 규모를 생각하면 사실 국산화는 큰 실익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확실한 품질의 제품을 저가에 공급할 수 있는 일본 업체와 거래를 했다. 그러던 것이 경제 외적인 문제로 인해 국산화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불산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일까. 불산의 원료는 정제되지 않은 ‘무수(無水)불산’으로, 중국에서 들여온다. 즉, 완전한 국산화를 위해서는 무수불산을 국산화해야 한다. 무수불산은 광산에서 캐는 형석(CaF2)을 황산(H2SO4)과 반응시켜 얻는다. 형석의 주된 산지가 중국인 데다 무수불산 제조는 환경에 매우 큰 부담을 주는 산업이라 국내에서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필자가 정말로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지난 수년간 중국 정부는 자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 발전에 엄청난 국력을 쏟아부었다. 현재 플래시 메모리는 한국과 1~2년, DRAM은 3~5년 정도 격차인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질은 떨어지지만, 시장에 중국산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음을 고려하면 늦어도 5년 안에 중국은 어느 정도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당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될 것이다. 만약 중국이 무수불산 수출을 통제하면 국내 반도체 회사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과거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등을 생각하면 반드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늑대’(일본) 피하려다 ‘호랑이’(중국) 만나게 되는 꼴인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반도체 대기업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공급선의 다변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확실한 공급선인 일본을 배제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국민감정이 이런 방향을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소한 국내 시장과 턱없이 부족한 원료 광물 등을 고려하면 냉철한 판단을 앞세우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중앙일보 2020.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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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8-06 17: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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