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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강남준은 서울대 사회과학대 언론정보학과에서  2017년 정년퇴직 후 곧바로 충주에 내려가  어머니가 평생 일구어 놓으신 1만여 평의 사과농장을 이어받아  오로지 과수원 영농에만 전념하고 있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내려가 살면서 스스로 농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는 세속의 정보와는 담을 쌓다시피 언론매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자칭  '사과장수'로 변신한 그는 이따금씩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리곤 하는데, 그 가운데 적합한 글을 골라 여기에 옮겨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주>  



오랫만에 포스팅 한다. 그동안 과수원 적과(摘果, 실한 과일만 두고 부실한 것은 따 냄) 소독 등에 정신이 없어 페 북 눈 팅은 해도 느긋하게 포스팅 할 여유가 없었다. 어제부터 짬이 좀 나 그동안 심어만 놓고 방치한 텃밭 잡초를 제거하였다. 어제 1 시간, 오늘 1 시간 정도 일 하니 대충  2/3 정도 끝냈다. 이제부터 큰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 1 시간 정도 텃밭 가꾸기나 해야겠다. 


최근  '욕망하는 식물'과  '채식의 배반'이라는 책 두 권을 읽었는데, 잡초를 제거하면서 책 내용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지었다. 평상시 같으면 잡초 제거용 쇠스랑을 들고 "이 나쁜 잡초야!..." 하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사정없이 막 휘둘렀을 텐데 이 책 두 권을 읽고 나니 갑자기 '이 풀도 생명이거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멀칭 비닐(잡초가 끼어들지 않고 모종만 잘 자라도록 검은 색 비닐로 덮어 놓은 것)에 쌓여 보호 받으며 고이 자라고 있는 오이, 호박, 고추, 가지, 옥수수 등과 뭐가 다르지? 얘 네들은 요즘 말로  '비닐 수저'  물고 태어나 멀칭비닐 안에서 호사하며 크고, 잡초는 말 그대로 '흙 수저'라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힐 뿐이다.


          최근 읽은 두 권의 책이 사과농사 짓는 내게 생명의 소중함 일깨워


어디 그 뿐일까. 쇠스랑이며 호미 등으로 뿌리 채 뽑히고, 허리 동강나고, 심지어는 제초제라는 극독물질까지 뒤집어 써야 하니 '욕망하는 식물'의 저자는 식물이 자신의 씨를 최대한 퍼뜨리기 위해 더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 종자, 잎, 대궁 등을 만들어 내 인간이 열심히 이것들을 보호 재배한다고 했다.


     부실한 것은 제 때 솎아줘야 실한 사과가 잘 자란다. 충주에 있는 필자의  서림 사과농장에서 인부들이 적과를 하고 있다. 


그래서 식물이 인간을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잡초는 이런 재주가 없어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아 기를 쓰고 없애려 한다. 그러나 잡초는 생명력 하나는 정말 끈질기다. 그렇게 박해를 하는데도 '여름철 잡초는 뽑고 뒤돌아 서면 다시 수북이 나 있다'라는 말처럼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온갖 비민주적 박해와 압박 속에서도 꿋꿋이 이 나라를 지켜온 우리 국민, 즉 민초(民草)와 닮았다. 그래서 민초에 풀 초(草)자를 쓰나보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찌됐거나 이 민초들이 어깨를 펴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진정한 민초의 나라, 즉 이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새 이런 저런 법을 만들겠다고 기세가 등등한데, 뭐 '잡초보호법'을 한 번 입법 제안하면 어떨까 한다. 그동안 박해만 받았던 잡초들을 보호하고 멀칭비닐 수저만 믿고 호사하며 살던 구시대의 식물들은 도태시키고 그럼 풀때기 죽만 먹고 살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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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5 15: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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