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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디지털 성범죄와 플랫폼 책임 법제의 평가
  • 기사등록 2020-05-21 16:41:27
  • 기사수정 2020-05-21 16: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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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 내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과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단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신상공개 대상으로 삼는 내용의 청소년 보호법이 통과됐다.

비례의 원칙상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전 억제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포털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불법 촬영물 등의 온라인 유포에 대한 사전 방지를 위해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 기업은 민간 사업자에게 사적 공간에 대한 검열을 강제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삭제, 접속 차단 등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 중 불법 촬영물, 불법 편집물 및 아동·청소년 이용 성 착취물로 이용자의 사적 대화는 대상 정보에 포함되지 않으며 사업자는 신고, 삭제 요청 등이 있는 경우 유통방지 의무가 있을 뿐 자체적 모니터링 의무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단속하고 통제하라고 하니 억울할 수도 있다. 범죄행위에 대한 단속이나 처벌은 국가의 의무와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광범위한 확산과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각종 불법 행위를 국가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워 플랫폼에도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입법이 진행돼 왔다.

이런 의무를 부과하는 근거는 플랫폼이 가상공간을 운영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점, 현실적으로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점, 플랫폼 자신이 관리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위인 만큼 관리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이미 저작권법은 직접 침해자 외에 매개자인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특히 웹하드 사업자의 경우에는 권리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해당 저작물 등의 불법적 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 등을 하도록 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도 플랫폼이 인터넷상에서 일반에게 공개·유통되는 불법 촬영물의 유통을 명백히 인식한 때에는 즉시 삭제 또는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웹하드 사업자의 경우 불법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은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 등의 권리 침해 정보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플랫폼이, 또는 플랫폼이 임의로 해당 불법 정보를 삭제 또는 임시적 차단 조치를 할 수 있다. 결국 개정법안과 현행법의 차이는 플랫폼의 조치 의무가 종전 불법 촬영물에서 디지털 성 범죄물 전반으로 확대되고 웹하드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던 기술적 조치 의무를 플랫폼 사업자 일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관련해 종래부터 대법원은 저작권 침해 관련 플랫폼의 책임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구체적·개별적인 게시물의 삭제 및 차단 요구를 받은 경우는 물론 피해자로부터 직접적 요구를 받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거나 그 게시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음이 외관상 명백히 드러나며, 또한 기술적ㆍ경제적으로 그 게시물에 대한 관리ㆍ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해 왔다. 즉, 인식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개정법안은 위 판례와도 부합한다.

다만, 향후 의무사업자의 범위, 기술적 조치 의무의 내용 등을 시행령에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사업자의 부담 능력, 현실적 의무이행 가능성 등을 면밀히 고려함으로써 디지털 성 범죄 방지라는 공익과 민간 플랫폼 사업자의 사익과의 균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경제신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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