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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결성된 핵연료워킹그룹(NFWG)이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이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원자력의 재활성화 필요성을 제시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빠르게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해 가는 상황을 세계 안보의 위기로 본 것이다. 러시아는 19개국 50기 원전 건설에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은 20기 원전 수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원전 수출은커녕 자국에 건설 중인 서머 원전 2기와 보글 원전 2기의 준공마저 지연시키고 있다.

원자력 기술은 값싸고 친환경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에 핵무기로 전환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누구나 원자력발전소를 수입해서 건설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에는 이른바 ‘123협정’으로 불리는 원자력 기본 협정을 통해 핵확산금지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신규 원전 도입국이 미국을 배제하고 러시아와 중국과 ‘123협정’을 맺는 상황을 미국은 세계 안보의 위기로 보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세계 원전 시장을 5000억∼7400억 달러로 전망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440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55기가 건설 중이며, 2030년 가동을 목표로 109기가 추진 중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2040년까지 1조5000억 달러 투자를 예측했다.


 한번 원전을 수출하면 수입국과 100년간 부품과 기술 수출이라는 영향력이 유지되는 중요한 시장을 놓치는 것을 미국의 경제적 위기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원자력 경쟁력 회복을 위해 우라늄 채광에서 원전산업 활성화, 원전 수출을 위한 공적자금 지원, 중소형 혁신형 원자로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을 포함한 전방위적 지원 계획을 제시했다.

그런데 미국의 이 원대한 계획에는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필수적 요소다. 1979년 TMI-2호기 원전 사고 이후 40년간 신규 원전 발주가 중단됨에 따라 미국 원전 건설 생태계가 붕괴됐다. 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이 지연됨에 따라 웨스팅하우스는 캐나다 투자펀드 브룩필드 비즈니스 파트너스에 매각되고 말았다.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의 중심 역할을 한다 할지라도 두산중공업과 그 협력사가 없다면 쉽지 않다.

서머 원전과 보글 원전의 원자로 용기, 증기 발생기 등 주기기를 두산중공업에서 공급했다. 웨스팅하우스가 중국에 수출한 산먼 1호기(AP1000)의 주기기도 두산중공업에서 공급했다. 캐나다가 중국 친산(秦山)에 수출한 원전 주기기도 우리가 공급했다. 우리도 모르는 새 두산중공업은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이다. 


TMI-2호기 원전 사고 이후 미국 내 신규 원전 발주가 중단되자 우리가 그 기술을 전수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유럽 지역에서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된 동안 우리나라는 착실히 원전을 건설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켰다.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규제 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등 안전 감시 체계를 근원적으로 보강한 우리 원전 산업은 세계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서방 세계의 유일한 경쟁력 있는 원전 주기기 공장이 됐다.

이 공장이 내년 3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위한 납품을 끝으로 문을 닫게 생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연됐던 원자력 르네상스의 재개를 목전에 두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넘어서기 위해 대통령은 선결제를 권장했다. 그렇다면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라는 선결제를 통해 한국 원전 생태계의 생명줄을 이어줄 수 있다. 그것이 경제 발전과 세계 안보라는 범지구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문화일보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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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0 17: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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