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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경제학)

국가재정이 파탄 나고 있다. 1분기 관리재정수지가 55조30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국가채무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7년 2분기를 정점으로 경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매년 추경을 해서 재정 지출을 늘렸지만 경기는 계속 나빠졌다. 이제 국가채무의 수준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넜다.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국가채무를 개선할 수 없게 됐다. 유럽 및 남미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같은 위기가 우리에게도 조만간 찾아올 것이다.

지난해 청와대 대변인은 “곳간(에) 재정 쌓아 두면 썩어 버리기 마련”이라고 했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 재미를 본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올해도 “채권을 발행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탱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법”이며 빚을 더 내서라도 씀씀이를 늘리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청와대의 인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금 나라 곳간에는 쌓아둔 재정은 없고 빚만 남아 있다. 2019년부터는 기존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국가채무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재정 지출을 늘린다고 경제가 성장한다면 유럽 및 남미의 재정위기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가재정 상태는 코로나19 사태 대비에도 영향을 준다. 인구 1천만명 이상의 국가 중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한 나라는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순이다. 이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은 모두 110%를 넘는다.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의 국가채무 비율은 약 126.2%, 117.1%, 156.7%다.

정부가 쓰는 돈은 많아도 국민은 경기침체와 코로나19로 고통스럽다. 재정 지출이 많다고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이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재정위기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다. 걸핏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거론하며 우리의 국가재정이 건전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왜곡된 정치 프레임에 불과하다. 남이 아프면 우리도 아파야 하는가.

이들 국가의 재정도 과거엔 건전했다. 재정 지출의 고삐를 놓친 이후에는 개선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면서 빚과 이자를 갚는 데 재정을 지출하고 이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다 보니 경제는 성장하지 못한다. 악순환에 빠져 세율이 아무리 높아도 빚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도 GDP 대비 40%가 넘고 저성장이 고착돼 국가채무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

2016년과 2017년의 재량적 지출 증가율은 1%에 그쳤다. 이때는 법으로 정해져서 어쩔 수 없이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의무적 지출만으로 재정을 꾸렸다. 그런데 2019년과 2020년 재량적 지출 증가율은 8%와 11%였다. 의무적 지출 증가율도 각각 11%, 7%로 매우 높다.

문 정권에서는 재정 지출의 규모는 커지고 그 효과는 줄어들었다. 재정 지출의 증가액 대비 명목 GDP 증가액의 비율은 2016년 7.5에서 2019년 1.5로 떨어졌다. 정부의 씀씀이는 헤퍼지고 국민소득은 늘지 않았다. 결국, 국세 수입도 줄었다. 국세 수입 증가율은 2019년 0.4%, 2020년 -0.9%로, 2012∼2016년의 연평균 4.6%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정부의 무능이 드러난 셈이다.

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경제를 침체시키고 재정도 파탄 냈다.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바른 정책이 보인다. 청와대가 솔선해 선심성 정책을 거두고 올바른 정책을 수립해 경제를 살리길 바란다.   (문화일보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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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9 17: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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