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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수)


프랑스 정치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모든 정치적 변혁은 과거에 비하면 혁명적이지만 미래에 비하면 반동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끊임없는 해석과 재평가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역사적 지위를 획득하기는 쉽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고립된 광주에서 시작해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전범이 됐고 세계 인권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건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이 과정은 민주, 인권, 평화를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지속적으로 재규정하고 확장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가능했다.
 
1980년 5월 광주는 신군부 세력의 계엄확대를 통한 정권장악 시도에 시민들이 정면으로 저항한 현장이었고 고립 속의 짧은 승리와 시민공동체의 출현을 거쳐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학살한 반인도적 범죄의 현장이었다. 패배로 끝난 듯했던 5·18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민주주의 이행 역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1995년의 반전을 가져왔다. 5·18의 가해자들이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내란혐의로 사형과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후 5·18 민주화운동 기록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세계사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이 권위주의적 국가로부터 오던 시절의 고전적 사회운동 유형에 속한다. 민주화 이후 그러한 위협은 주로 자본으로부터 오며 우리는 결국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최대 개념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으면 경쟁의 절차를 중심으로 한 최소 개념의 민주주의도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또한 민주화에서 인권으로 담론의 초점을 이전 확장하면서 조사, 명예회복, 처벌, 보상, 기념 순으로 이루어진 화해와 상생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지만 코로나19 위기 이후 생명을 가진 모든 것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인권 개념의 전환 요구에도 답해야 한다.
 
물론 지역의 사건에서 세계사적 의의를 찾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 예컨대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강제송환의 실무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1961년 재판에서 2가지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면서 첫번째, 피고를 인류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유대인에 대한 범죄로 기소한 점 두번째, 국제법정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 점을 지적했을 때 그는 아이히만의 행위가 세계사적 차원의 인류에 반한 범죄로 해석되기를 희망하며 이 재판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차원을 넘어 세계사의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성취의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보편적 인권이 갖는 상징적 허구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구체적인 지역의 맥락을 떠나 추상화한 논의는 보편적 인간 일반으로 환원된 개인의 인권을 역설적이게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동안 시련 속에서 지속된 5·18 민주화운동의 재해석과 계승과정은 보편적 인권이라는 상징적 허구를 향한 인간의 열망이 실질적 효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5·18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민간인 학살 및 인권유린 과정에 등장한 인물과 현장의 모습을 추적하는 작업이 여전히 중요함을 말해준다. (머니투데이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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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8 18: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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