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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수·인구학)


“혹시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아기가 갑자기 많이 태어나지 않을까요. 코로나 베이비부머가 생길 것 같아요.” 최근 필자가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 궁금증의 배경에는 역사적인 경험이 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1~2년 정도 뒤에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이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실제 사례가 적지 않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약 5억 명을 감염시키고 최소 1천 7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스웨덴, 미국, 노르웨이, 영국, 대만, 인도 등 많은 국가에서 출생아 수가 일시적으로 줄었다가 이듬해부터 수년간 크게 늘었다. 일시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든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혼인과 출산을 기피했기 때문이고, 공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자녀를 출산하여 베이비부머를 만들었다. 역사적 경험처럼 지금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코로나 사태도 앞으로 베이비부머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의 근거다.


인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가 볼 때, 이번 코로나 사태가 베이비부머를 만들어 낼 개연성은 그리 높지 않다. 왜냐하면 베이비부머를 만들어 낸 기존의 전염병들과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스페인독감도 그렇고 베이비부머로 이어진 다른 전염병의 주된 사망자는 영유아였고 감염자의 상당수가 청년 인구였다. 청년이 감염되면 혼인과 출산을 꺼린다. 주변에서 어린이가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줄어든 혼인, 출산, 영유아의 수는 전염병이 사라지면 빨리 회복되어야 하고, 그 결과가 베이비부머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청년과 영유아보다는 주로 고령층에서 감염자도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영유아와 청년인구에 주는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역사 속의 사례들과 코로나 사태는 최소한 출산과 관련해서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와 관련해서 필자가 더 주목하고 있는 인구현상은 이주다. 유엔인구국(UN Population Division)에 따르면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의 수가 2019년 약 2억 7천 2백만 명이다. 전 세계 인구가 78억 명이니 이주민의 수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이주민들은 대부분 젊다. 젊은 인구의 이주는 주로 경제활동이나 학업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산업에서 이주민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주민들의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섬유·의류, 농수산업, 식품산업,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대학산업 등으로 대부분 국가들의 주요 산업군을 포괄한다. 전 세계의 시장과 경제는 이제 이주 근로자나 유학생이 없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는 자유로운 이주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던 세계 경제에 빨간불을 켰다. 이미 수많은 이주민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본국으로 돌아갔다. 만일 귀환이 일시적이라면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국제 이주에 주는 효과는 절대로 단기적일 수 없다. 당장 치료제나 예방약이 발견되더라도 이미 전염성 질환의 확산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경험한 국가들은 또 다시 창궐할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민자를 수용하는데 있어 더욱 소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며칠 전 보도처럼 앞으로 이민 비자 발급에 더욱 신중할 거라는 미국의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주가 막혔을 때 발생할 일은 이주 근로자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한 산업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금융의 흐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면서 이주민을 보내는 나라의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주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remittance)이다. 이주 근로가 어렵게 되면 이 돈줄이 끊겨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예컨대 네팔은 레미턴스가 GDP의 29%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코로나로 인한 이주의 제한이 네팔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제조업, 건설업, 농수산업, 서비스업 등의 분야도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주 관련 검역정책을 펴는지에 따라 이들 산업은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뿐만 아니다. 이미 등록금의 상당부분을 외국인 유학생에 의존해 온 수많은 대학들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것이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했는데, 이들은 언제 다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지금 각국에서는 경제가 돌아야 하기 때문에 생활방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활방역으로 바뀌고 일상의 경제활동이 재개된다고 해도 그것이 이주민에게 까지 적용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 세계는 이제부터 이주가 자유롭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준비하고 적응하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중앙일보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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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23 1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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