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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국정원장·통일장관 파격 인사  ‘비핵평화 프로세스’ 시동 걸 듯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투 톱은 단연코 청와대 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이다. 여기에 대북정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실행 부처인 통일부를 합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책임지는 세 개 중추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이 세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었다. 청문회를 거친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그리고 국정원장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서훈 실장이 그들이다. 


타이밍을 고려할 때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인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한 번 재시동을 걸 준비를 하는 듯하다.

박정희 정권 수립 직후인 1963년 12월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설치되어 자문회의 성격으로 유지되다가, 김대중정부 시절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처럼 정책 기능을 강화하고자 1997년 사무처가 처음 생겨났고, 박용옥 전 국방차관이 초대 사무처장을 맡게 된다. 


그러다가 2013년 북핵 문제의 악화로 현재의 안보실로 출범하게 되었다. 청와대 업무를 총괄하는 비서실장,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정책실장과 함께 안보실장은 청와대 3실장 체제의 일원이 된 것이다. 서훈 전 국정원장의 수평 이동은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한편 1961년 군사정변 직후 사회 안정을 위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최전선에 섰던 중앙정보부를 모태로 한 국정원은 더욱 투명한 운영과 과다한 권력 남용 방지를 위해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거듭나게 되고, 박지원 전 의원은 초대 대외안보정보원장이 되는 셈이다.
통일부의 경우 사실 문재인정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정책으로 내걸고 핵 문제 해결과 평화정착을 병행 추진하는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정작 통일부가 제대로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전임 두 명의 통일부 장관의 존재감은 미약했고, 문재인정부의 통일부 위상이 왜 이런가 하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 다시 비핵화 포기 선언....모래 위에 평화 쌓지는 말아야


신선함을 넘어서 ‘파격 인사’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았던 박지원 국정원장의 등장, 전대협 1기 의장으로 학생 운동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지략가로 알려진 서훈 안보실장, 이 세 인물이 동시에 등장했다. 보수와 진보로 첨예하게 나뉘어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와 우려의 교차 선이 깊다.


기대하는 측에서 보자면, ‘대동강 맥주’와 ‘남한의 쌀’을 물물교환해 보자는 이 장관의 발언이 참신하게 들릴 것이다. 또 지금까지의 모든 남북정상회담에서 매번 우리 대통령을 깨알같이 도우며 산파역을 맡았던 서 실장,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인 박 원장, 이 두 사람이 우리 국민들을 감동시킬 평화의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우려하는 측에서 보자면,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며칠 전이었던 7월 27일 북한이 주장하는 한국전쟁 승전기념일 행사에서 매우 명백한 목소리로 ‘비핵화 포기 발언’을 했다.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핵 억제력은 영원히 굳건하게 담보될 것이다”였다. 앞뒤의 몇 단어를 빼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이 달라지진 않는다. 


아무리 니체가 ‘사실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했더라도, 최근 김정은의 발언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의 모든 해석은 걱정과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다른 분야의 정책과 달라서 정부 내 일부 사람만이 정보를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이런 정보독점과 비밀주의가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다. 서 실장, 박 원장, 그리고 이 장관은 2022년 상반기까지 북한 문제에 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만의 해석을 통해 국민들에게 북한 문제를 설명하게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문재인정부가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했던 최초의 의도마저 비난받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절대로 모래 위에 평화를 쌓는 사상누각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2020.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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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8-04 1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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