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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 호주(濠洲)의 중고품 가게에 재고가 없는 이유
  • 기사등록 2020-08-03 11:43:38
  • 기사수정 2020-08-03 15: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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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국방일보 편집인




 "어!  그 모자  멋있네, 얼마 주고 산 거요?" 

호주에서 3개월만에 귀국한 나에게 마을 테니스 친구들이 묻는 말이다. 아마도 외국에서 돈 좀 주고 샀으려니 생각한 모양이다.


 "4백원 짜리네." 

 "하하하~ 허허허"  

내 대답에 친구들은 파안대소한다. 농담이 지나치다는 표정들이다. 나는 윌슨 라켓을 꺼내들며 " 이건 얼마인 줄 아는고? "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짐작이 안 간다는 뜻이다. 


 "8천원 줬네, 호주돈으로는 10달러일세." 

친구들은 또한번 박장대소한다. 최소한 20 만원이 넘는 테니스 라켓을 8천원에 샀다니 이게 사실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


유럽에서 카톨릭 종교 행사때 사제들이 쓰는 은(銀) 잔도 내가 사 온 품목중 하나다. 순은은 아니고 은 도금이지만 1개에 1달러, 나는 거기 있는 12개를 몽땅 사서 집에 가져왔다. 반짝반짝 닦아서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분위기가 짱이다. 


호주에 가면  "op"( opportunity shop) 라는 가게가 마을마다 있다. 우리로 말하면 중고물건 파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쓰다말고 버리게 된 물건들을 이곳에다 기부한다. 그저 이 가게 앞에다 두고 가면 그만이다. 이곳에는 마을의 시니어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한다.


대부분 머리 하얀 할머니들이 나와서 일을 한다. 봉사하면서 보람도 얻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사회 시스템인 셈이다 봉사자들은 물건들을 선별, 세탁, 수리, 청소해서 진열하고 판매한다. 없는 것 빼고 웬만한 물건들은 다 있다. 


의류, 생활도구, 부엌살림, 아이들 장난감, 가구, 스포츠 기구들까지 만물상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품목은 명품가방 브랜드 의류 등이다. 심지어는 가난한 제3국의 유학생들이 이곳에서 명품을 사서 인터넷에 팔아 학비를 버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걸 발견한 날은 로또 맞는 날인거다.  


그런데 로또가 자주 맞아들어가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우리나라 중고가게에는 팔지못해 쌓여있는 물건들이 큰 골치거리라 한다.  사실 쌓여가는 재고 때문에 중고가게 운영하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그런데 호주 op에는 재고가 남지않는 특별한 비법이 있다. one  dollar  day가 바로 그것이다. 매월 하루 지정된 날에는 모든 물건이 1달러다. 물론 1달러 이하짜리도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 날을 기다린다. 이날은 마을 주민들 모두가 일단 가게에 나와 본다.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찾는다. 찾기만하면 횡재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니 재고가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공짜로 기부받은 물건이니 손해 볼 것도 없다. 일단 가게를 비우고 새 물건을 받는 것이다. 참으로 좋은 제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인데도 중고품을 사서 쓰는 문화가 생활 속에 깊이 정착되어 있었다. 


선진국의 문화, 선진국의 삶을 보며 실용주의를 생각한다. 체면과 낭비와 허례허식이 생활 곳곳에 꽈리틀고 앉아있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본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와 제도가 정착되면 얼마나 편리하고 유익할까. 


우리 주변에도 중고품 가게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가까이 있어야 하고, 공짜로 줍는 정도의 수준으로 가격이 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나서면 좋고, 각종 봉사단체들이 나서도 좋고, 지역내 종교단체가 나서면 더욱 좋을듯 하다. 


봉사단체들이 통상 잘못 생각하는 것이 "이익을 남겨 좋은 일에 쓴다" 는  사고방식이다. 주민들에게 싸게 파는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구촌이  쓰레기로 몸살을 않고 있는 이 시대에   생활비도 절약하고 죽어가는 지구도 살릴 수 있는 비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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