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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6> "사람은 왜 겸허해야 하는가?"
  • 기사등록 2020-07-24 17:44:07
  • 기사수정 2020-08-12 16: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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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옛날 공자가 제자들과 천하를 떠돌아다닐 때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끼니를 거른 지 며칠이 됐고, 일행은 배고프고 기운이 떨어진 나머지 여기저기서 잠이 들었다. 공자도 그 근처에서 쉬는 둥 마는 둥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제자 안회(顔回)가 어디에선가 간신히 쌀을 구해와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밥 짓던 안회가 갑자기 밥솥 뚜껑을 열더니 얼른 밥을 한 움큼 먹는 게 아닌가. 공자는 안회에게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회는 평소에 수양이 깊어 보여 그가 가장 기대하던 제자였는데, 잠시 배고픈 것을 못 참고 짓던 밥을 맨손으로 퍼먹다니 그 행실이 실망스럽게 여겨진 것이다. 


공자는 안회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면서 그의 속을 떠보려고 했다. “안회야, 내가 아까 잠깐 꿈에 조상님을 뵈었느니라. 그러니 조상님께 간단한 제사를 올려야겠구나. 제사에는 정갈한 밥을 올려야 하니 어서 준비하여라.”


그러자 안회가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안됩니다, 스승님! 제가 아까 밥이 익었는지 보려고 솥뚜껑을 열 때 천정에서 까만 재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그걸 제가 먹었습니다. 제 손을 탄 밥을 어찌 제사에 쓸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제자 안회를 잠시라도 의심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여태까지 나는 내 눈과 판단력을 믿어왔다. 그런데 오늘에야 그게 별로 믿을 만한 게 아님을 알겠구나. 너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보고 들은 것일지라도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공자의 상 (<위키피디아> 사진)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의 묘. (<위키피디아> 사진) 

 


왜 우리는 겸허해야 할까? 우선, 사람들은 잘난 체하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설령 정말로 많은 것을 잘 알고 사실을 잘 파악하며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해내는 사람이라도, 그런 능력이나 성과를 스스로 과시하면 보고 듣는 사람은 불쾌감을 느낀다. 이런 불쾌감이 열등감의 발로인지 선망의 심리가 굴절되어 나타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교만해서는 안 되고 겸손, 겸허해야 한다는 요구는 보다 근본적인 사실에 뿌리박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런 신을 향해서는 겸허하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제아무리 슬기로워도 결코 완벽할 수는 없다. 지혜롭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일지라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개연성, 문제를 피상적, 단편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게 마련이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직관력, 감각, 판단력이나 자신의 지식, 정보는 확고하고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고 여기는 오만함, 자기중심적 경향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별로 합당한 근거나 타당성이 없는 생각이나 고정관념마저 불변의 진리인 양 집착하는 폐쇄성이 누구에게나 엄존한다. 

교만함, 겸허하지 않은 사고방식의 심각한 문제점은 사실을 파악하고 진실에 접근하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원천 봉쇄해버린다는 데 있다. 근거 박약한 지식을 굳건한 진리로, 왜곡된 정보를 사실에 바탕을 둔 것으로, 미봉책을 근본적 해결책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오해를 그대로 지니고 갈 경우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폐해로 귀결됨은 물론이다. 나의 지식, 믿음, 관점은 내가 사회화 과정을 밟은 소속 집단이나 문화로부터 부지불식간에 학습한 것들에 불과할 수 있다. 내가 사실이나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바가 실제로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바탕에 세워진 허구나 허위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한때는 거의 절대적 진리인 양 숭배된 것이 나중에 허황되거나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정말 흔하지 않는가. 인간인 이상, 우리는 언제나 모든 문제에 겸허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겸허하지 않으면, 개인이든 국가든, 꼼꼼한 합리적 검토를 통한 발전이나 성장을 기약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역사를 퇴행시키는 커다란 어리석음마저 저지를 수 있다. 한 사회, 국가에서 특히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 즉 그의 판단이나 믿음에 따라 의사 결정, 정책 결정, 문제 해결책이 좌우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한 예로서, 대통령은 중용(重用)하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안목이나 판단력, 민심의 향방, 자신이 확신하는 정책 방향 등에 관해 혹시 자신이 잘못하고 있지 않나 겸허하게 부단히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그 결과나 영향의 범위가 엄청난 국가 대사들을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런 겸허한 자세, 자만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 말고 오류를 최소화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비결은 따로 없다. 결국 겸허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필수적, 보편적 덕목인 것이다. 


우리가 애써 길러야 할 것은 다양한 문제들의 각론적 해결 능력 못지않게 매사에 겸허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사에서 거시적, 장기적인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늘 겸허한 자세로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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