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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영국 대사)



필자가 영국에서 대사로 재직하던 2016~2018년,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과 영국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상호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그레이트브리튼` 섬은 한반도 면적과 거의 같고 영국 인구수도 한민족과 비슷하다는 점, 영국은 농사가 잘 안되고 지하자원도 부족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두 나라 모두 실용적 마인드와 개척 정신으로 세계를 누볐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무역 규모는 당시 영국이 세계 7위, 한국이 8위. 국내총생산(GDP)은 영국이 5위, 한국이 11위. 특히 브렉시트로 유럽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로 다시 뻗어가려는 영국에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영국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나라와 한국이 비슷하다고 말하기가 좀 쑥스럽기도 했다. 반응이 좋을 때도 그냥 한국대사 앞에서 예의상 그러는 건 아닐까 했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면서 영국 장차관들이 한국에 대해 거의 같은 표현을 써가며 연설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영국에서는 국회의원 중 힘센 정치인들이 장차관이 되고 그들의 연설은 중요한 메시지다. "우리나라가 정말 컸구나"라고 뿌듯했다.  영국만이 아니다. 세계인들은 한국을 첫째, 고급 휴대폰과 평면 TV로 상징되는 하이테크 선진국, 둘째, K드라마와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뜨거운 산실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잘사는 나라며 한때 최빈국이었다는 사실은 석기시대 얘기다. BBC는 `왜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이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는지`에 대해 심층 분석하기도 했다.


세계인이 한국을 경이롭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과 한민족이라는 점이다. 역사도 문화도 생김새도 똑같은데 세습 독재와 굶주림, 핵무기로 악명 높은 북한과 나라의 발전상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인종적 DNA가 같아도 체제와 이념이 다르면 수십 년 만에 얼마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할 때 그들은 한반도를 공부한다.


2018년 귀국해보니 한국은 북한이 얼마나 악명 높은 후진국인지를 말하기가 눈치 보이는 독특한 나라가 돼가고 있었다.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면 마치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비핵화의 거품이 걷히며 북한이 본성을 드러내는 한편 K방역으로 한국이 세계의 귀감으로 격상되는 와중에도, 정부는 북한 정권과의 관계 개선에 올인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인권 모든 면에서 철저히 실패한 국가인 북한이 그 반대인 대한민국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핵무기 때문인가? 아니다. 북핵은 한미동맹으로 대처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과 사이좋게 지내면 평화도 번영도 통일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문제다. 총체적으로 실패한 체제와 손잡는 것으로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다면 기적이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독일 통일 과정은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끌어낸 주도면밀한 외교, 시대를 앞서간 소프트 파워의 축적, 그리고 동독 주민의 기본권 개선을 조건으로 관계를 맺어간 서독의 장기 전략으로 설명된다.


세계 속 한국의 모습과 한반도 내 한국의 모습 간에 괴리가 너무 크다. 남북 관계에서도 선진 한국의 정상적인 모습을 지켜야 언젠가 한반도에 선진 통일국가가 태동할 수 있다.

  • (매일경제 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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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7-10 17: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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