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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중국의 늑대외교, 대륙의 민심얻고 세계의 인심잃다
  • 기사등록 2020-07-06 18:26:45
  • 기사수정 2020-07-06 18: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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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기자 사진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중국의 많은 외교관이 최근 ‘늑대 전사(戰狼, Wolf Warrior)’로 불린다. 외교관 특유의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 대신 거친 말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에서 히트한 영화 ‘전랑(戰狼)’에 나오는 전사처럼 툭하면 싸운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중국 외교는 외국 아닌 자국에 초점
외국 때릴수록 지도부와 국민 열광
“중국 외교가 죽어간다” 비판 나와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중국 바이두 캡처]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자칫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열 마디 반격에 뼈도 못 추리는 게 요즘 현실이다. 당연히 국제 사회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2015~18년 호주 총리를 역임한 말콤 턴불은 베이징의 ‘늑대 외교’는 역풍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외교의 변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국 외교의 변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루마니아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인 안드레이 룽구의 경우엔 “중국 외교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 외교엔 왜 전랑이 출현할 걸까. 일각에선 중국엔 애초부터 늑대 외교의 전통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외교와 관련, 국민당 출신 인사를 쓰지 말라고 했다. 이에 충성과 강직, 능력을 갖춘 인민해방군 장성을 외교관으로 대거 발탁해 ‘장군 외교’ 시대를 열었다.


‘원수(元帥) 외교관’이란 칭호를 들은 천이(陳毅)가 대표적 인물로, “공격이 곧 방어다(以攻爲守)”라는 정신 아래 돌격 외교를 지향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 시기 들어 외교 행태는 크게 바뀌었다.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경제 발전을 위해 분쟁은 잠시 접어놓고 우호적인 대외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생겼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때 각지에 세워진 외국어 인재 양성 학교 출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를 제대로 익힌 이들은 개혁·개방 이래 지난 40년간 중국의 부상을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려한 화술로 중국의 친구를 만들고 상대의 말을 경청해 중국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켰다.


중국이 세계 경제와 함께 호흡하게 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이 그런 중국 외교의 소산이었다. 정비젠(鄭必堅) 중앙당교 부교장은 서방의 ‘중국위협론’에 맞설 용어로, 중국의 ‘평화적 부상(Peaceful Rise)’을 고안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2기 들어 중국 외교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데 중국은 말도 못하나. 그런 시대는 갔다”고 말한 게 늑대 외교로의 변신을 대변한다.

               

중국 외교는 왜 늑대가 됐나. 세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첫 번째는 국력 신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란 주장이다. 세계 1위 공업국이자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외교가 때를 기다리던 단계(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이젠 적극적으로 할 일은 할 때가 됐다(積極有爲)는 거다.


두 번째는 세대 변화다. 신중국 초기 1세대 외교관은 1910년대~30년대 출생해 전쟁과 혁명을 경험했고 개혁·개방을 주도한 2세대 외교관은 1940년대와 50년대 태어나 빈곤과 동란을 겪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외교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상대는 러시아다. 푸틴 대통령을 자주 찾아 결속을 다짐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외교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상대는 러시아다. 푸틴 대통령을 자주 찾아 결속을 다짐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시진핑 시기 3세대 외교관은 1960년대~80년대라는 중국의 국가발전 시기에 출생해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강하다. 이들은 서방의 고자세를 용납하지 않으며 양보에 익숙하지도 않다.


세 번째는 공격적인 성향의 시진핑 리더십이다. 시 주석은 바둑도 공격적인 바둑을 강조하며 외교도 적극적일 것을 주문한다. 시진핑 리더십은 또 애국주의를 역설한다. 장기 집권에 나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중국 국민의 지지 여부다.

               

그러다 보니 중국 외교가 외국과 교섭해 외국인의 마음을 얻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 중국 외교관이 들으라고 말하는 대상이 외국 정부나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중국 국민인 경우가 많아졌다.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외국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자성어가 곧잘 등장하는 이유다. 겅솽(耿爽) 전 대변인은 지난해 3월 영국의 홍콩사무 간여를 비판하며 “사실을 무시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信口雌黃)” 등 무려 10개의 성어를 사용했다.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은 기자회견이 이뤄진 그 날 밤 중국 언론에 ‘외국을 혼내 준 모습’으로 포장돼 대서특필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엔 해외 주재 중국대사관의 거친 발언이 큰 화제가 됐다. 주재국 정부를 격분하게 한 발언으로 프랑스, 나이지리아, 호주 등 7개 국가에 나가 있는 중국 외교관이 주재국으로부터 초치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중국 외교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내에선 중국 인민들이 자신들의 발언에 열광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 그럴수록 자신들의 승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눈치채고 있다. 파키스탄주재 중국대사관에 근무하다 외교부 대변인으로 발탁된 자오리젠(趙立堅)이 좋은 예다.


자오는 전투적인 트윗으로 유명해 ‘싸움닭’으로 불린다. 그의 승진이 해외에 나가 있는 많은 중국 외교관에게 깊은 영감(?)을 줬을 건 분명하다. 이에 따라 중국 외교엔 늑대 전사가 당분간 계속 출현할 전망이다. 위로는 지도부의 비호를 받고 아래로는 국민이 받쳐 주는 형국이니 말이다.

              

문제는 중국에선 이 같은 중국의 늑대 외교가 칭송을 받는 것과 비례해 해외에선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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