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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최숙현 선수의 죽음은 고질적인 폭력문화가 낳은 결과
  • 기사등록 2020-07-06 15:25:18
  • 기사수정 2020-07-07 1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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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루키 더 바스켓' 편집장)

 


스물 두 살의  젊은 유망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26일, 경주시청 소속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은 팀 내에서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타고난 신체 조건에서 다른 민족, 인종보다 열세인 한국 선수들은 더 많은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 시절, 국민들의 축 처진 어깨에 한껏 자부심을 심어준 것도 불리한 조건을 딛고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우리의 스포츠 스타들이었다. 


지금은 영화와  K-팝,  K-컬처가 세계 문화 시장에서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지만, 코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빛낸 맨 파워의 시작은 바로 스포츠였다.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훈련과 인권 유린이 일상으로 되풀이 되곤 했었다. 1등만 기억하는 잔혹한 세상, 그런 사회환경과 문화도 이런 문제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 


선수들은 더 높은 성과와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어려서부터 합숙 훈련을 시작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장 배경을 가진 이들이 어려서부터 전체의 목적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 합숙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형화 된 위계질서 속에서 개인간의 갈등을 겪으며 십수 년 이상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을 이끌고 관리하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코치이자 스승이며, 때로는 부모의 역할도 해야 한다. 선수들 뿐 아니라 지도자의 인성도 중요한 이유다.


선수를 지도하면서 어느 정도의 체벌은 당연시 하던 시절을 지나, 그것이  ‘필요악’으로 여겨지던 과도기도 지났다. 지금은 보다 성숙한 지도 방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나머지 그런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 ‘최숙현 사망 사건’의 가해자들은  한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죄자들이자, 한국 스포츠 발전을 역행한 배신자들이다. 증거와 증언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아직 수사중인 만큼,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고, 2차 피해자를 양산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개된 녹음파일에서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느끼는 좌절과 분노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하물며 당사자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는 제 3자의 그것을 훨씬 초과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에는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여론에 밀려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거나, 올바른 지도를 하는 이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초기 피해자 측의 문제 제기에도 경찰, 협회, 대한체육회 등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처벌과 쇄신의 폭은 더 확대돼야 할 것이다.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각 지자체들이 ‘체육팀을 운영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고인을 위해 용기 있게 증인으로 나선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비열한 행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을 때 온당한 권리를 지켜주지 못했던 한 선수의 영정 앞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체육계 선배로 고개 숙일 수 있도록 합당한 조치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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