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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중 한국
  대사관 참사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경제 약소국의 부채 증가→부도위기 직면→각종 이권을 중국이 접수→경제파탄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일부 관련국들이 사업 중단과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은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주변국들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버릇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고 오랜 역사 속에서 체화된 나쁜 폐습(弊習)이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 중국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들도 참석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때는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고, 일본인을 간첩혐의로 억류하는 등 무차별 공세를 펼침으로써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한·미 동맹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우리와의 경제·문화·인적교류를 위축시킬 정도의 다각적인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자국민의 한국관광을 틀어막고 중국주재 한국기업을 폐쇄하는 등 치졸한 행태를 서슴없이 자행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뚱(毛澤東)은 인민들에게 중국을 ‘패권자’로 부르지 말라는 교시(不稱覇=불칭패)를 내렸다. 이것은 당시 미국-소련의 틈바구니에서 마오가 선택한 생존전략이었다. 이어 덩샤오핑(鄧小平)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들고 나왔는데, 이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대외 마찰을 줄이고, 빛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르자’는 것이었다. 

 

문화대혁명(1966-1976)과 개혁·개방기(1978년) 이후 30여년 만인 2010년, 중국은 마침내 국민총생산액(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국에 올랐다. 이른바 G2가 된 것이다. 그때까지 약자임을 자처해 온 중국은 이때부터 중화사상이 부활한 듯 거침없는 외교노선을 펼쳐 나갔다. 주변국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는 ‘노(NO)’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경제역량이 커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였다. 장쩌민(江澤民)은 도광양회의 기조에서 벗어나 ‘필요한 역할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표방하면서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을 주창했다. 후진타오(胡錦濤)는 중국의 부상(浮上)을 기정사실로 한 상태에서 ‘협력과 공존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루겠다’며 자신 있게 ‘화평굴기(和平?起)’를 내놓았다. 

 

중국어에 ‘돌돌핍인’(咄咄逼人)이라는 말이 있다. 힘으로 밀어부치는 외교관행과 위안화 절상(切上), 무역마찰 등을 보면 딱 들어맞는 말로,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할 때’ 주로 사용한다. ‘돌(咄)’은 ‘남을 윽박지르는 소리’이고, ‘돌돌(咄咄)’은 ‘놀라서 이상히 여기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나타내는 감탄사다. 

 

국방력과 경제력이 급격히 커지면서 외교에서도 사뭇 공세적인 행태를 취하고 나선 게 일상이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면 우리도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늘 명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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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24 05: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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