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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볼턴 책이 알려주는 트럼프의 문제점
  • 기사등록 2020-06-22 16:55:53
  • 기사수정 2020-06-22 16: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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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책은 도널드 드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관련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이상의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대통령은 무지하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영국이 핵보유국이고 핀란드가 러시아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외교정책에 관한 확고한 소신도 없다. 베네수엘라 침공 운운하며 열을 올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의 신간 발췌록과 이제까지 나온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볼턴이 새로 들춰낸 사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지나 원칙과 일관성을 결여한 정책이 아니라 성격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트럼프는 대체로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정책을 밀어부쳤다. 부유층의 세금을 인하했고 각종 규제를 철폐했으며 연방법원에 보수성향의 판사들을 줄줄이 임명했고, 국방예산을 크게 늘렸다. 그는 이민과 무역이라는 두 중요 분야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공식에서 벗어났고, 고강도의 이민제한은 물론 관세와 국가보조금 및 중상주의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공화당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정책들이 아니라 그의 성격이다. 트럼프는 품위, 도덕성, 심지어 법보다 자신의 개인적,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한다. 볼턴은 트럼프에 반기를 든 첫 번째 최고위 보좌관이 아니다. 앞서 렉스 틸러슨과 제임스 매티스, 존 켈 리도 트럼프를 비난하고 깎아 내렸지만 볼턴만큼 세세한 사례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가 폭로한 세부정보들은 트럼프의 죄를 묻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다. 트럼프는 “대통령인 나와 나눈 모든 대화는 극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자기방어를 위한 트럼프의 이 같은 지적은 볼턴이 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반증한다.

볼턴의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개입요청에 따라 터키 은행의 비리를 캐던 미 연방검사들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에 불리한 정보를 넘겨준 이후에야 연방 의회가 승인한 군사지원금을 전달하겠다며 압박했다. 볼턴은 자신과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8~10회에 걸쳐 트럼프에게 의회의 결정대로 우크라이나에 지원금을 전달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과의 거래다. 대 중국 정책은 미국 대통령이 신경 써서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다. 그것은 향후 수 십 년간 전쟁과 평화 사이를 오갈 무게추의 이동방향을 결정할 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과 우방국 전체의 국가안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중국과의 관계를 그의 사적 이익, 구체적으로는 재선 가능성 확대에 보탬이 되도록 이용하고 조작하고 변경했다.

볼턴은 트럼프가 시진핑 주석의 호감을 사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중국 기업들에 대한 기소 결정은 물론 범죄행위에 따른 형사 처벌까지 뒤집었다고 말한다. 올해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는 지난해 시 주석에게 자신의 지지기반인 중서부 주의 농산품 구입을 늘리면, 그 대가로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인하하겠다고 스스럼없이 제안했다.


그것도 모자라 트럼프는 인권 탄압 비난을 불러온 시 주석의 위구르 재교육 캠프 설치계획에 찬사를 보냈다. 볼턴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시 주석에게 통사정을 했다고 전한다. 가장 놀라운 일은 상대를 정확히 파악한 중국이 국익보다 개인적, 정치적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에 공공연히 장단을 맞췄다는 사실이다. 당시 시 주석은 앞으로 6년간 트럼프가 백악관에 계속 남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대통령직 연임을 2회로 제한한 법 규정을 내게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게 세간의 여론”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들의 집단의견으로 포장해 내놓는 트럼프의 상투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중국과의 거래, 그리고 트럼프의 해외 정책 전반에 관한 볼턴의 결론은 숨이 막힌다. ‘트럼프는 무역뿐 아니라 국가안보 분야까지 망라한 이슈 전반에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국익을 뒤섞어 놓았다. 백악관 재임 시절, 나는 그의 중요 결정 중 재선과 관계없는 것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보수성향의 대법관 임명과 감세 등 그들이 늘 원했던 특정 정책 탓에 트럼프를 기꺼이 지지해온 유권자들에게 볼턴의 책은 그에 따른 비용이 대단히 비싸다는 점을 분명하게 일러준다. 트럼프는 법의 잣대를 구부리고, 어떤 거래도 마다 않는 등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대가를 치르려 들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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