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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경제학 교수)

전염병과 경제위기는 적자생존을 강요하여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지점들을 파고들어 숨기고 싶은 아픈 문제들을 더 들추어낸다.

고용보험 일자리 5월 동향을 보면, 20~30대 일자리가 10만개 넘게 줄었다. 청년 일자리 충격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1차 충격은 그날 벌어 그날 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 2차 충격은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나야 할 40~50대 가장들, 그리고 3차 충격이 청년 채용 절벽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하다. 정책도 긴급재난지원, 고용유지지원, 경기회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순서대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키지로 집행해야 할 듯하다.

코로나 2020 세대는 취업을 앞둔 청년 세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염은 고령층에, 경제는 청년층에 더 큰 부담이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취업준비생이나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충격은 더 클 것이다. 일자리를 탐색하면서 더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가는 시기에 경제위기를 당하면 입직 시 임금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쁜 일자리 매칭을 강요당한다. 전문가나 학자들도 초기에 일자리 매칭이 좋으면 연구 성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시기에 경제위기를 마주하는 ‘시대의 불운아’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흉터도 평생 간다는 것을 기존 연구들도 잘 보여 준다. 연구 결과들은 상식적이지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대의 불운’ 효과는 매우 장기에 걸쳐 나타난다. 졸업 후 첫 직장을 가지는 시기에 경기위기를 겪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에 비해 10~15년에 걸쳐 임금이 평균 5~10% 적다. 이후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 효과는 지속되며 이는 고용보다는 임금과 소득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생애 소비도 평균 5% 낮아진다. 이러한 상처와 흉터 효과는 저학력-저숙련 청년층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

둘째, ‘불황 졸업자’들은 일 경력이 미흡하고 독신일 확률이 높아 사회안전망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지원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한다.

셋째, 경제위기로 자산 가격이 임금보다 더 떨어질 경우 청년 세대에 대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더 작을 수 있고 청년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불운아’들이 경제위기로 자산을 취득할 확률은 높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도 글로벌 자산 가격 하락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넷째, 노동시장 진입 시 경제위기의 영향은 일자리와 소득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 일에 대한 태도, 정치적 선호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대의 불운아’들은 인생의 성공이 노력보다는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직업 선호에서도 ‘의미 있는 일’보다는 ‘벌이’(금전적 보상)를 더 중요시하고 소득을 위해 일의 의미를 포기하겠다는 비율도 더 높다. ‘일의 의미’는 경제학적 의미에서 가치재(소득이 높아질수록 더 소비하게 되는 재화)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는 경제위기 시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시대의 불운아’들은 재분배 정책과 좌파 정당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상당한 정도로 왼쪽으로 아니면 포퓰리즘 쪽으로 갈 것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초기 성인기에 신념, 가치, 태도가 결정되고 그 이후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적 선호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어느 세대나 ‘시대의 불운’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불황 졸업자’들의 상처 효과는 더 깊고 흉터 효과는 매우 길다. 우리 사회가 ‘아이엠에프(IMF) 세대’의 흉터에 ‘코로나 2020 세대’의 상처를 안고 가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다.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청년 자산 형성도, 더 좋은 교육과 훈련도, 고용유지와 채용유지의 균형을 찾아내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불리하게 시작하는 것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회적 컨설팅도 필요하다. 우리는 현실의 어려움에도 수많은 재앙을 극복하고 커다란 일을 도모했던 호모 사피엔스 아니던가. (한겨레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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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10 18: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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