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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객원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 또는 불평등의 그늘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집단감염의 진원지인 개척교회나 물류센터, 방문판매 사업소나 콜센터는 저소득 불안정 고용의 현장이다. 최근 고용통계를 보더라도 저소득 취약계층부터 일자리를 잃고 있다. 늘 그렀듯이 이번에도 위기는 약자부터 무너트리고 있다.

정부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뿌리고 연거푸 추경을 편성하며 2022년 까지 31조원을 투입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55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호언하지만 뉴딜사업의 어디에서도 빚을 당겨쓰는 절박함이나 번득이는 새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레퍼토리나 고위공직자들의 일시적 월급 반납 등은 역대정부가 늘 꺼내 쓰던 위기대응 매뉴얼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선도형 경제로 나아가고 불평등도 줄여보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은 공허한 수사에 그칠 공산이 크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 동안 가장 역점을 뒀던 국정목표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렇게 위급할 때 그동안 써왔던 정책 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다. 내년 최저임금을 1%라도 올릴 수 있을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나 근로시간 단축은 또 어떨까. 정책의 효과가 지속되고 확산하려면 제도와 질서를 바꿔야 하지만 그간의 정책은 예산과 대통령의 의지에 크게 좌우됐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이 국가 대전환의 종합계획이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재정의 규모만 키울게 아니라 ‘포괄적이고 큰 스케일로, 긴 구상을’ 갖고 사회경제구조의 골격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산업구조 혁신과 사회제도 개혁이 메인 코스가 돼야 한다. 양극화를 줄이고 신분으로서의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면 노동시장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나서야 한다.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려면 노사 요구사항을 패키지로 묶어 사회적 타협을 시도하던 노동개혁1.0 시대의 관성을 깨고 개혁의 메뉴와 알고리즘을 재구성해야한다. 산업화 시대의 근로자 개념에 기초해 설계된 노동규범과 고용안전망, 인력양성 체계를 디지털 경제에 맞게 전면적으로 혁신하겠는 대담함을 보여야 한다. 이는 임기를 넘어 추진할 대통령 프로젝트여야 한다. 

여기에는 2년 내에 추진할 단기과제뿐 아니라 3년 이상의 중기과제나 10년 장기과제도 포함돼야한다.


노동개혁 2.0에 빠질 수 없는 메뉴 중 첫 번째 과제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금과 인사제도 혁신이다. 직무와 상관없이 공공영역의 모든 일자리가 특급 일자리로 대우받으며 인재를 쓸어가는 나라가 디지털 경제를 선도할 수 없다. 우수 인재들이 첨단 기술기업으로 몰려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과 특수형태고용직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도록 직종별 노동시장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체계적인 경력관리와 공정한 임금체계, 보편적인 근로자 복지 프로그램들이 마련돼야 한다. 

셋째 대학이 정원과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원에 묶이고 실험장비가 부족해 첨단기술 인력을 키우지 못하는 비정상을 고쳐야 한다. 폴리텍 대학의 현장밀착형 교육훈련을 더욱 확대하고 부실화된 지방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기능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이밖에도 산업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라 고용안전망을 확장하고 노동법의 적용 기준을 항목별로 세분화하고 다각화하는 개혁과제 등이 있다.

개혁의 추진방식도 다양하게 설계해야 한다. 모든 개혁메뉴를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릴 필요는 없다. 주고받기 식의 패키지 딜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다. 어떤 이슈는 노사가 타협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 좋지만 어떤 때는 공론화를 거친 후 정부가 결단하는 방식이 나을 수 있다, 때로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경제신문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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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9 18: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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