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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특임교수 前 駐폴란드 대사)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글로벌 전략 환경이 냉전시대 미·소 ‘공포의 균형’보다도 더 후퇴하는 양상이다. 특히, 최근 미·중 대결은 임계점을 돌파한 상태여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가시권에 들어온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런 시점에 미국은 한국을 ‘G7’ 회의에 초청했고, 우리는 이를 즉각 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전략 환경 악화 속에서 향후 우리는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먼저, 글로벌 전략안보 분야부터 살펴보자. 재작년 미국은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이란 간에 채택된 ‘이란핵합의(JCPOA)’를 파기하더니, 지난해엔 유럽 안보의 중추인 ‘미·러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폐기하고, 올 5월에는 서방·러시아 간 대표적 신뢰 구축 규범인 ‘영공개방조약(Open Skies Treaty)’ 탈퇴도 발표했다. 러·중의 ‘저위력(low yield) 핵실험’을 이유로 28년 만에 핵실험 재개 문제도 논의했단다. 미·러 간의 유일한 현존 군축 규범인 ‘신전략무기 감축조약(New START)’도 별도 합의가 없으면 내년 2월이면 종료된다.

러시아는 같은 사회주의권인 중국과 협조하며, 아·태지역보다 유럽과 중동에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2014년 초 발발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챙기면서 사이버 해킹 등 나토(NATO) 회원국을 대상으로 복합적 공격을 강화한다. 시리아와 리비아 사태에 개입하고 터키와의 군사 협력으로 나토의 내부 균열도 노린다. 냉전 종식과 연방 해체로 러시아의 입지는 과거에 비해 약해진 듯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건재하고 핵미사일과 국초음속무기 등 전략무기 분야에서는 미국과 양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자국을 위협하는 외부 움직임에 단호히 조치한다. 반중(反中) 전선 구축 목적으로 G7 확대 구상을 발표하는 등 선택적 국제 협력도 모색한다. 11월 초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중국을 계속 격하게 때릴 것이다. 미국이 INF를 파기하고 New START의 연장에 소극적인 것도 미·러 군축 규범에 중국을 편입시키기 위한 압박 차원이다. 연계와 융합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미·중 간 무역·기술·인권 등 비군사적 분쟁도 결국 전략안보적 맥락에서 읽힌다. 코로나19 진원지 논쟁에 이은 홍콩보안법 문제도 미·중 간 신냉전을 부추기는 데 일조한다. 이런 때일수록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초 취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고한 것처럼,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킨들버거의 함정’ 모두 조심해야 한다.

일련의 상황은 우리에게 매우 정교한 대응을 요구한다.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이 올 G7 회의에 초청했고 이를 수락한 건 잘한 일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중국의 반발과 기존 G7의 반응 등에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G11’이라며 우쭐거리지 말고 차분하게 전략을 세울 때다.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균형을 유지하되 우리의 기본 가치는 수호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전하고 설득하며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대혼돈과 글로벌 전략 환경의 악화라는 미증유의 도전이 오히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제적 위상을 높이면서 한반도에 자유와 평화·번영을 가져오도록 외교력을 결집해야 할 때다. 오늘의 도전을 넘어 내일의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대전략이 요구된다. (문화일보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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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4 18: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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