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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 前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유엔 인권이사회의 산하 기구인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이 납북된 34명의 강제실종자에 대한 질의서를 지난해 11월 북한으로 발송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전시 납북자 문제를 비롯한 북한의 총체적인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9월 WGEID는 6·25전쟁 때 민간인 납북자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북한에 요청하기로 의결하고, 이 질의서를 11월에 북한 당국으로 발송한 내용을 최근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는데, 지난 5월 28일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엔과 국제사회는 납북자를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데 비해, 억류된 전시·전후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너무 미흡하고 불성실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3차례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납북자·국군포로·탈북자 등의 인권 문제는 그 어떤 선언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2018년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종전선언을 토대로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핵과 인권 문제 및 6·25전쟁의 청산 없이도 가능한가.


20세기 이후 국제사회는 자기 방어 및 유엔이 승인한 무력행위를 제외한 전쟁은 국제법 위반 행위로 규정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48년에 채택된 ‘집단살해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과 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협약’은 전쟁 때 군포로 및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전쟁범죄로 간주하는 동시에, 이를 행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 간의 그 어떤 평화조약도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는 국제법상 그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올바른 평화체제 구축은 우선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책임을 묻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사망자만 국군 14만 명, 민간인 24만5000명이고, 양민 학살로 숨진 사람도 약 13만 명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전쟁범죄 행위가 국제인도법의 기본규칙을 얼마나 어겼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일성은 6·25 때 남북한에서 계획적인 숙청 및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명의 부상병을 총살하고 환자 등 900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서울대병원 학살사건’(1950.6.28), 충남 서천군의 한 등기소 창고에서 250명이 학살당한 ‘서천등기소 학살사건’(1950. 9.27), 수감 중이던 500여 명이 무참하게 살해된 ‘전주형무소 학살사건’(1950.9.25∼28) 등이 단편적인 예다.

최근 2009년작 영화 ‘테이킹 챈스(Taking Chance)’를 볼 기회가 있었다. 2004년 이라크전쟁에서 차량 호송작전 중 전사한 미 해병대 챈스 펠프스 이병의 시신 봉송에 대한 실화인데, 미국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한 젊은 전사자 시신의 명예로운 귀환을 위해 쏟아붓는 열정과 배려에 큰 감명을 받았다. 


마침 한국군 최대 호국영웅인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논란’이 불거진 우리 상황과는 너무 비교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제 제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부와 국회가 6·25전쟁 70주년을 계기로 북한 소행 전쟁범죄를 되새기고, 최소한 전시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문화일보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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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2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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