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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4월 말 육군을 비롯한 국방부는 무척 억울한 표정이었다. 코로나19 방역에서 군이 보여준 헌신적 노력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안사고에서부터 하극상에 폭행, 그리고 성추행 사건까지 잇따라 보도되면서 “군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휘서신을 보내 일벌백계를 경고했지만, 그 이후에도 사고가 속출했다. 지휘부의 지시조차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언론의 보도방식은 단순했다. 사건·사고가 집중되자 ‘군 기강 해이’로 몰아붙인 것이다. 


한 매체는 사설까지 동원해서 “이러고서야 제대로 된 군대라 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런 군대를 믿고 국민들이 어떻게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느냐는 핀잔도 덧붙였다.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언론은 중요한 쟁점을 놓치고 있었다. 


우선, 개인적 일탈과 군 조직의 문제를 분별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것이 ‘일반화의 오류’다. 개별적인 일을 조직 전체의 것으로 일반화시키는 잘못이다. 


개인적인 일탈이 몰려서 발생하다 보면 조직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물론 아무리 개인적 일탈이라 해도 빈번하게 발생할 경우 그 자체가 조직적 문제가 된다. 언론의 보도도 이런 맥락에서 군 기강 해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개인적 일탈은 있을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조직이 통제할 수 없는 개인적 일탈(혹은 수준)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조직의 사기와 역동성을 해치게 된다. 국방부는 언론과 함께 수용 가능한 수준의 사건·사고에 대한 현실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가 발표한 수치는 전반적 상황을 확인하는 객관적 지표가 됐다. 이런 자료가 공개된다면 언론의 입장에서나 국방부의 입장에서도 현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개인적 실수와 지휘책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군부대의 사건·사고는 개인적 잘못과 지휘책임이 혼재돼 있다.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침과 기준을 마련하고, 군과 언론이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다. 사고가 날 때마다 무조건 지휘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상 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고가 무서워 훈련을 기피하는 경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주체는 군 지휘부와 언론이다. 군 지휘부는 훈련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해당 지휘관이 특별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과정에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충분한 주의와 교육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훈련사고에 대해서는 개인의 잘못과 구조적 문제를 구분해서 보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휘 책임에 있어서 도의적 책임과 실질적 책임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론이 도의적 책임을 강요할 경우, 현장지휘관들은 자신의 잘못과 무관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위험을 수반하는 훈련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병사들의 개인적 실수로 인한 사고에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만 ‘실질적인’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고위 지휘관이 얼굴도 모르는 병사들의 개인적 일탈 때문에 도의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국가 중추기관으로서 국군의 기강을 묻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러나 잘잘못에 대한 분별 있는 질책이 중요하다. 언론이 개인적 일탈을 일반화하지 않는 의식적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책임과 지휘책임을 구별할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군을 책임 있는 조직으로, 강한 훈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그리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으로 만들어가는 길이다. (이데일리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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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1 22: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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