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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지난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홍콩 보안법’이 통과됨으로써 홍콩 정세는 국제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1984년 영국과 중국은 2049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다. 양국은 홍콩이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며, 중국의 공산체제 대신 자유민주주의 방식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합의했다.


 2012년 홍콩이 중국의 압력 속에 자치 형식으로 국가안전법을 제정하려다가 시민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번에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해 집행기관까지 홍콩에 설치하려는 것은 홍콩반환협정을 유효기간 전에 파기함을 의미한다.

중국의 조치는 홍콩 자체는 물론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미·중 간 신(新)냉전으로 이어질 기세다. 북한과 베트남은 지지 성명을 발표했으나, 일본 및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다양한 파급효과를 예상할 수 있겠으나, 핵심 문제인 ‘홍콩의 자유 박탈’은 심각한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자유의 제한은 심각한 인권 문제로 직결된다. 1975년 당시 동서유럽 국가들이 참여해 안보와 인권 조항이 모두 포함된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서방 국가들이 인권 조항을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이행한 결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동유럽 공산체제의 붕괴라는 ‘헬싱키 프로세스’로 이어졌다.


유엔이 발표한 ‘1994년 인간개발 보고서’는 기존 인간의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통적 군사안보 외에도 ‘인간안보’ 등 안보 개념을 7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이후 인간안보가 핵심인 인권 문제는 국가 간 내정간섭의 금지 범주에서 제외됐다. 현대 인권 문제는 이러한 발전 추세에 힘입어 한 국가의 국력에 관계없이 정치·경제 부문보다 우선하며, 홍콩 보안법은 ‘아시아판(版)’ 헬싱키 프로세스 등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미·중 간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한국의 균형외교 전략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미국은 홍콩 보안법 제정을 계기로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 철회, ‘위구르 인권법’ 제정 등 다양한 대응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인권 문제의 영향이 정치·경제 부문으로 연계되는 상황이다. 현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간 갈등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을 바탕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입장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홍콩 인권법에 대해 침묵하는 한국에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 현 정부는 사드(THAAD) 문제 역시 안보·외교 부문 대중(對中) 관계 차원에서 곤혹스러움을 면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중국과 대결하면서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이념적 상응성, 한반도의 미국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 상호 동맹 존속 및 유지 비용 등 분명한 입장을 요구한다. 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경우에 따라 양국으로부터 동시에 관계 단절 내지 배제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달을 수 있다.

미·중은 한국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할 것이다. 과거 ‘한반도 운전자론’은 한국의 힘이 양국을 압도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현 상황은 안타깝게도 양자택일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안미경중의 차원에서 2018년 IMF가 발표한 GDP 통계를 보면, 미국 네트워크는 44조 달러이고, 중국 네트워크는 19조 달러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홍콩)를 죽이는 중국의 선택을 따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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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1 18: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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