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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연내 개발 어려워 경제봉쇄 조치 계속 시행하며
바이러스 완전 퇴치 매달리면 기업 도산·실업자 증가 불보듯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출구가 없으니까 출구 전략도 없다."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 직후 한 국제금융 전문가의 얘기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 등이 금리를 0% 수준으로 낮춘 뒤(제로금리) 돈을 무제한 푸는(양적완화) 긴급처방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세간의 관심은 언제 어떻게 이 `비정상`을 벗어나 금리 정상화라는 `출구(exit)`로 나갈 수 있을지에 쏠려 있었다.


제로금리는 금융의 악성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가면 보험사들이 다 망할 수 있다. 경제정책의 면역기능도 크게 약해진다. 경기가 나빠질 때 강력한 대응 수단이 금리 인하인데 그 효과가 뚝 떨어진다.


 통상 금융 상식으로는 이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출구를 찾아야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바이러스를 데리고 살아왔다. 2007년 5.25%에 달했던 미국 기준금리는 금융위기 직후 0%대로 떨어진 뒤 2017년이 돼서야 1%대로 올라섰다.


 2%대로 잠깐 올라가는 동안 미국과 다른 나라들 간에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나면서 세계경제가 크게 흔들렸다. 미국은 `정상화`를 중지했고 2019년에는 금리 인하로 돌아섰다. 이번엔 코로나19 위기가 벌어지니까 제로금리로 갔다.


세계경제가 금융 바이러스와 동행한 것은 출구 대책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이러스 퇴치에 매달리다 보면 실물경제라는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 봉쇄를 푸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대책도 없이 봉쇄를 푼다"고 비판한다. 한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선방한 나라들도 확진자가 조금만 나타나면 관련자들을 격리시키고 시설을 폐쇄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런 일들은 출구가 없는데도 출구 대책에 매달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 같다. 출구에 대한 가장 큰 기대는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에 걸려 있다. 몇 가지 백신이 곧 개발될 것이라는 소식도 언론을 장식한다. 그렇지만 백신이 올해 중 일반에게 보급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러면 세계경제가 연말까지 봉쇄 혹은 준(準)봉쇄 상태를 버틸 수 있을까? 불가능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지금 봉쇄를 해제하는 것은 `2차 파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봉쇄를 계속하다가는 파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2분기에 40%가량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조차 GDP가 10%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망한 기업, 좀비 기업이 즐비해지고 실업자가 더 양산되면 사회 불안을 감당할 수 없다. 그냥 적당히 핑계를 잡아 봉쇄를 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4개월 동안은 마치 코로나19가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이고 각국 정부는 그 대응을 누가 더 잘했는지에 따라 등수가 매겨지는 올림픽 경기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에 경도됐던 시선을 넓혀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사망자는 5600만명가량에 달한다. 호흡기질환 사망자는 550만명가량이다. 한국도 연간 총사망자는 30만명, 호흡기질환 사망자는 2만3000명에 달한다. 그동안 코로나19 사망자 숫자가 전체 사망자 추세를 크게 바꿨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비해 경제는 지나치게 악화됐다. 한국도 4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산업안정기금을 출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5대 산업에 필요한 급전만 105조원에 달한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19 올림픽 메달을 지키고 2차 파동 가능성을 없애는 데에만 매달려 기업과 경제를 더 희생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전반적인 대응책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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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1 16: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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