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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재정 지출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이 많다는 고전적 레퍼토리에 더해 국채를 발행해 성장률을 지탱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 수준을 낮춰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경제수석의 논리에, 대규모 적자재정으로 경제 선순환 궤도로 올라설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까지 나왔다. 친정부 언론과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 개발에 분주한 모습이다. 매우 특수한 국가에만 해당할 수 있는, 국가채무는 아무리 많아도 문제없다는 주장까지 원용한다.

그러나 이 논리를 하나씩 검토해 보면 오류가 금방 드러난다.

먼저,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은 어떠한가. 국가들의 재정 여력과 재정위험을 GDP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을 통해 평가하는 것은 한 국가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총생산을 통해서 상환해야 하는 빚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는 의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전제는 국가가 경제 전체의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필요할 경우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대한민국은 전체 경제에서 정부 부문의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작을 뿐 아니라, 조세부담률도 상당히 낮다. 이는 국가의 1년 수입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이 매우 높고 이자 비율도 높다는 의미다. 다른 OECD 회원국들이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비중이 매우 낮고 부채도 최소한도이나 우리나라는 D3로 표시되는 실질적 국가부채인 공공부문 부채 수준도 상당히 높다. 이를 종합할 때 실제로 남은 재정 여력이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확대재정이 과연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장밋빛 전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부의 사업계획서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재정 확대를 납세자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될지를 예상하고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부문에 제대로 설계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탈(脫)세계화, 대규모의 자본화와 무인화된 생산공정, 분산화와 언택트된 사회상에 대해 우리 기업들과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대전환시킬 것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연대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준비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가 없는 상태에서 돈만 투입되면 그것이 오히려 경제의 대전환에 방해가 될 개연성이 더 크다. 이는 재정 일자리 사업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재정 확대 후 재정 건전성이 곧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재정 투입에 따른 경제활동으로 세수입이 생긴다 한들 현행의 조세 체계에서는 세입의 발생은 크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증세하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 회복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정부가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 국민의 희생과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악역을 맡을 것인가. 이제까지 보여준 중산층 포퓰리즘 정부가 미래세대를 위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경제의 구조 개혁 없이 약간의 경기 반등에 따른 현재 세대의 소비 증가와 미래 세대로의 비용, 국가채무의 전가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안은 무엇인가.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와 경제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도록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임이 명백한 사업에 한해 추경에 담도록 허용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제대로 해야 효과가 있으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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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8 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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