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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성가족부 차관)


지난 25일 '30년간 정대협이 나를 이용했다'고 폭로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눈물 어린 기자회견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눔의집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직원들이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고 집단으로 비리를 고발할 정도이니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았음을 보여준다. 


피해자를 둘러싼 단체들의 갈등은 간혹 들려왔지만 내막이 이럴 줄은 몰랐다. 워낙 국민정서와 맞닿아 있는 사건이라 검찰 수사에서 의혹이 밝혀지더라도 피해자뿐만 아니라 국민이 입은 마음의 충격과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선의로 단체의 활동을 지지하며 기부금을 낸 시민들의 상실감은 더 클 것이다. 필자도 명성교회 교인이지만, 쉼터와 매달 생활비를 제공한 명성교회 교인들도 쉼터에 주민등록을 옮겨놓은 윤미향 전 대표의 뜬금없는 행적에 마음이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2013년 생존해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은 모두 55분이었다.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은 할머니들 모두 직접 만나서 위로도 하고 생활형편도 알아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단체들이 마뜩잖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마도 우리들이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왜 나서느냐는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만나보니 할머니들의 건강과 생활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직원들이 "차라리 지금 있는 예산으로 우리가 직접 7성급 호텔에 할머니들을 모셨으면 좋겠어요"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대협을 비롯한 단체와 나눔의집 같은 시설이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은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발전하면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늘고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운동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업무의 투명성이다.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감시나 견제가 없는 독점에는 반드시 부패가 생긴다는 것을. 독점에는 권력의 독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슈의 독점과 나만이 옳다는 독선도 이에 다 포함된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체 책임자의 연임제한, 기부금의 사용처 공개 등 감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정의연 정관에 따르면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임제한 규정이 없다. 임기는 3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고만 돼있다. 본인들이 원하면 평생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을 보시라. 종신 단체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기부금을 받는 공익법인에 한해서라도 공익법인법을 개정, 단체장 연임 제한규정을 넣을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고 질책하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정책 기조가 바뀌다보니 피해자들의 신뢰를 잃고 단체들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또 일본이라는 상대방이 있으니 정부도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위안부단체에 주는 보조금이나 기부금 관리가 잘됐다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정부는 한 부처의 일이 아니다. 외교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국세청, 지자체 등 여러 기관들이 관련돼 있어 부처 간 업무협조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범정부 차원의 조사와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허점이 드러난 제도를 개선하고, 피해자 중심 운동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 이용수 할머니가 강조한 것처럼 그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돼서는 안 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이슈를 사회와 함께 나누며, 투명성을 확보해 위안부 피해자 정책과 활동들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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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7 17: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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