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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



당황스러웠다. 커피 자판기에 100엔짜리 동전을 넣고 나서 자연스럽게 손이 컵이 나오는 출구로 향했는데 컵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컵의 출구가 플라스틱 판으로 막혀 있어서 그랬고 그 판을 손으로 당겨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 플라스틱 보호 커버는 뜨거운 커피가 종이컵에 쏟아진 다음에도 몇 초 흐른 후 열렸다. 일본 자판기는 다 이런가? 우리는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컵에 손을 넣는 것은 하나의 시퀀스인데 말이다.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 중 하나가 커피 자판기에 손 넣고 기다리기란다. 그 외에도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 크레딧 시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것,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리는 행동들이 있다. 그들이 상상도 못 한 빨리빨리 문화의 진수는 식당에서 고객의 카드를 받아 결제한 식당 주인이 일(一) 자로 대리 서명하는 모습이다.

언덕 골목길의 끝이 도로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에 살던 친구는 학교에 오면 어젯밤에도 차 한 대가 굴러떨어졌다고 말하곤 했다. 정지하지 못한 차들이 밤에 '길 없음'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계단으로 굴러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 막다른 길에 볼라드라는 것이 설치되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는 왜 이리 빨리빨리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강의 기적을 만든 시기에 우리는 학생으로서 앞사람 뒤에 줄줄이 서서 차례를 놓치면 선생님께 혼쭐이 났다. 행렬이 끊기거나 중단이 돼서도 안 됐다. 군대에서 남자들은 빨리빨리의 문화가 더욱 심화돼 사회로 배출됐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인 직장에 들어와서는 어수선한 법규 아래 양보 아니면 새치기 둘 중에 선택해야 했을 때 자칫 양보하다가는 바보 같다는 평판을 들어야 했다.

극심한 혼란기이던 1960년대 초 산업화의 사명감으로 열정이 가득하던 지도자가 제시한 '중단 없는 전진'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는 어느새 우리의 모토가 됐고, 그 덕분에 우리는 가난과 배고픔을 빠르게 극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몸의 기억은 아직도 가난하고 배고픈 상태일까?

엘리베이터에서 유모차나 어르신을 만나도 우리 몸이 멈추지 못하고 재빠르게 먼저 타고 내리는 이유는 왜일까? 빨리빨리 타고 비켜줘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경제적 효율만 중요시하던 과거를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행인보다도 먼저 차를 모는 사람은 행인 한 사람보다는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 뒤의 차들에 대한 배려심이 더 강했나 보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바짝 뒤를 쫓는 것은 자신이 국가와 민족의 경제 부흥에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파트 단지 안이든 어린이보호구역이든 빨리빨리 차를 모는 것은 차 행렬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 잘못된 교육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우리를 괴롭힌다.

중단 없는 전진으로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면 이제는 잠시 멈춰서 돌아볼 때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잘나가면 돼!"로 변질된 빨리빨리의 성장을 멈추고 우리의 이웃이 어디쯤 있는지, 안 보이도록 뒤처져 있는 사람은 없는지, 혹시나 다른 생각으로 멀리 떨어진 일원이 없는지 이제는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운명 공동체라고!" 그리고 그렇게 중단 없는 전진만 하다가는 앞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리 인류의 짧은 족적도 쉽게 끝날 것이라고. 공생을 깨우치게 하는 아주 작은 미생물의 큰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아시아경제신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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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5 16: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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