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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들어 미·중 간에 새로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옥죄기에 들어간 미국이 코로나19에 중국 책임론과 안보 위협을 거론하며 동맹국들을 향해 반(反)화웨이 전선 참여를 압박하고 나섰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는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을 경험했던 우리 정부로선 딜레마다.

어느 시대나 사회든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그래서 경제가 정치보다 우선이다. 정치가 처음엔 선악을 구별 못 해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결국엔 순리대로 회귀하는 원리도 경제의 이치다. 시장 현상을 연구하고 문제의 해법을 정치에서 찾으려는 경제학. 데이비드 리카도나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는 처음부터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불렀다.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을 구분해 주는 게 이 학문의 존재 이유다.

1920년대의 러시아, 1950년대의 중국, 1960년대 공산화로 수많은 농민을 굶주리게 한 탄자니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초토화된 2007년 짐바브웨, 부국에서 빈국으로 전락한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모두 나쁜 정책으로 큰 희생을 치른 나라들이다. 좋은 경제정책으로 성공한 경우도 많다. 2차대전 후 서유럽의 재건, 1990년대 중국과 동유럽의 경제성장, 지금 진행되는 8억 명 인도의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은 좋은 정책의 결과들이다. 2개의 한국이 지나온 역사는 현실 경제의 산 교훈이다. 북한의 나쁜 정책은 주민을 가난하게 했고, 한국의 좋은 정책은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려놨다.

‘경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기 소르망은 남북한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경제학에 관한 오래된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말한다. 수 세기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경제발전의 원천을 놓고 논쟁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경험은 이들 논란에 마침표를 찍게 하는 데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변신한 것도 정치경제가 제대로 작동해 온 덕분이다.

중국도 2개가 존재한다. 현실적인 중국과 신화적인 중국. 기 소르망의 얘기다. 현실은 신화에 가린다. 중국을 찾았던 서구인들이 끊임없이 중국을 이상화했다. 중국인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자유에 대한 열망도 서구와는 다르고, 공산당 독재도 중국인들의 소망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 체제라는 환상까지 만들어냈다. 이 착각은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민주주의를 빼놓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만을 운용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려는 편향성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중국의 모습은 공산당의 관보만큼이나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도약기를 넘어선 중국의 경제는 역사의 한때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성공했던 경제 모델로는 앞으로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 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정이 어려운 때는 먹고사는 문제로 접근하는 게 좋다. 미국 쪽엔 일본,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캐나다, 베트남 등이 있고, 중국 쪽엔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미얀마, 캄보디아, 베네수엘라, 북한이 있다. 경제학이 늘 비난받는 것은 예측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꼭 맞는 말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나쁜 정책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재앙이 올 거란 사실은 예측할 수 있다. “저쪽에 도착하고 싶으면 이쪽에선 출발하지 않는 게 좋다.” 발전경제학자 애비너시 K 딕시트의 말이다. (문화일보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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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5 16: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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