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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3> 습관의 힘은 막강하다
  • 기사등록 2020-05-25 16:10:11
  • 기사수정 2020-05-25 16: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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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3>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미국의 우주왕복선 엔데버 호는 최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엔데버 호의 추진 로켓의 폭은 약 145cm다. 추진 로켓의 폭이 이렇게 정해진 것은 기차선로의 폭에 맞췄기 때문이다.


추진 로켓을 운반하려면 기차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기차선로의 폭이 약 145cm였던 것이다. 이 기차선로 폭은 전 세계 철도의 60%의 표준 궤간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기차선로의 너비는 지역에 따라 달랐는데,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 동북부 지역의 표준 규격인 약 145cm의  ‘영국형’으로 통일된 것이다.

 

왜 영국의 철로 궤간은 이 규격으로 정해졌을까? 19세기 초에 영국은 증기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석탄 운반용 마차 선로를 일반 도로에 깔도록 설계했다. 이 마차 선로의 폭은 약 2천년전 로마군의 유럽 정복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로마군은 로마 전차 폭에 맞춰 유럽 전역에 도로를 건설했는데, 로마 전차는 대개 말 2마리가 끌었다. 자연히 이 로마 전차의 너비는 말 2마리 엉덩이의 폭을 합한 길이, 즉 약 145cm로 정해졌다. 결국 로마군이 유럽을 정벌한 후 유럽의 표준도로의 너비는 말 2마리 엉덩이의 폭으로 굳어진 것이다.

 

요약하면, 최첨단 우주왕복선의 추진 로켓의 폭은 사실상 2천년 전 로마의 말 2마리 엉덩이의 너비에 의해 결정됐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개념을 설명할 때 가끔 인용된다. 무엇이든 일단 어떤 경로가 정해지면 관성 때문에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기가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어제의 경로나 습관에 의존해 내일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습관은 다양한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마치 성격처럼 몸에 밴 어떤 것을 뜻한다. 집단이나, 규모가 비교적 큰 사회의 경우에는 개인의 습관에 해당하는 것을 관례나 관행이라고 한다. 민족이나 국가의 수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경우에는 전통 또는 관습이라고 부른다. 


부정적 습관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대체로 타성이라고 부른다. 집단의 부정적 관행은 전통과 대칭을 이루는 말로 ‘인습’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별다른 성찰 없이, 틀에 박힌 예전의 해법을 기계적으로 동원하여 대응하는 태도를 말한다.

 

개인에 대해서든 집단에 대해서든 이러한 습관, 전통, 관행, 타성, 인습의 영향력은 강력하고 끈질기다. 왜 타성이라는 덫은 무서운 폐해를 초래하는가? 우선 타성 그 자체가 문제 해결이나 사회, 국가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실체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문제점이다. 타성의 덫에 걸리고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성은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의 자각 능력을 마비시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타성의 해독은 다음의 우스갯소리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청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빡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깨어나서 헤아려보니 무려 다섯 시간이나 숙면을 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가슴을 치면서 한탄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세상에... 수면제도 안 먹고 잠을 자다니!” 사소한 습관이 쌓여 성격을 형성하고 성격은 결국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개인의 운명을 바꾸려면 성격을 바꿔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결국 습관을 고쳐야 한다. 


타성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다. 바람직한 사회나 국가의 미래상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인습이나 타성의 사슬을 과감히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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