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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인 15세기 조선시대에 마치 고생물학이나 지질학과 관련된 진화론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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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담적기


선대의 선비가 말하기를, “높은 산에 소라 껍질이 있고, 혹 어떤 것은 돌 속에 있는 것도 있는데, 이러한 돌은 옛날에는 흙이었으며, 소라라는 것은 물속에 사는 생물이다. 그러던 것이 낮은 곳이 변하여 높게 되고 부드러운 것이 변하여 단단하게 된 것이다.” 하였다. 나도 일찍이 산 위를 파서 흙 속에서 물이 마찰된 바둑알 만한 작은 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 역시 천지개벽 이전에는 물속에 있던 물건인가고 의심했던 적이 있다. 


소옹(邵雍)의 말에 의하면12만 9천 6백 년이 일원(一元)이니, 12만 9천 6백 년 이전에 천지개벽이 한 번 있었다. 그때 산천(山川)ㆍ초목(草木)ㆍ인물(人物)ㆍ벌레와 물고기 및 크고 작고 아름답고 더러운 것들이 수풀처럼 빽빽하게 천지에 가득 차 있어 마치 오늘날과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천지개벽이 일어날 때 큰 기운이 한꺼번에 불어닥쳐서 천지간을 한없이 크게 흔들자, 가볍고 깨끗하여 위로 올라갔던 것은 탁(濁)해져서 내려 앉고, 엉키고 메워서 내려갔던 것은 터져서 새어나왔다. 산과 냇물이 솟아나고 메워지고, 사람과 물체는 모두 멸하고 말았다


음양이 혼합하고 원기가 융화된 뒤에 다시 천지의 개벽이 일어나 탁하여 밑에 있던 것들이 다기 맑아져서 하늘이 되고, 터져 새어나간 것들이 다시 엉켜 땅이 되었으며, 산이 솟고 냇물이 흘렀으며 사람이 화생(化生)하여 번식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물이 모여서 큰 덩어리로 엉켜 굳어지는 것은 어떤 큰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큰 기운이 흩어지면 천지가 모두 혼합되어 흔적 없이 되어 버리는데, 하물며 그 사이 한 물체가 변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용광로에 비유한다면 강하고 단단하고 크고 작은 것 할 것 없이 모두 녹여버리는 것과 같은데, 하물며 천지간에 이미 흩어진 기운이 어찌 다시 남아 있는 것이 있겠는가. 


이래서 천지조화란 무궁무진하여 이미 간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고, 다시 오는 것이 그 뒤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 저 쇠를 녹이는 기구인 풀무[?] (저자주: 비(?)는 곧 지금의 피배(皮排)로, 대장장이가 이것을 사용하여 불을 일으키는 것이다. 《강목(綱目)》에 나온다)를 보면 부채같은 불꽃이 동(銅)을 녹여서 틀에 부어 물건을 만들게 된다. 그때는 반드시 쇳물이 녹아 물같이 되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응결되어 녹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능히 둥글거나 모난 대로 틀에 맞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찌꺼기가 있다면 어찌 하자가 없는 완전한 기구가 만들어지겠는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것이 모양이 매우 조잡하지만 진흙이 익지 않으면 이그러지고 찌그러져 그릇이 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천지의 조물(造物)에 있어서 어찌 한 개의 소라나 하나의 작은 돌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고서야 합하고 흩어지고 녹이고 붓고 열고 닫혀져 천지 형상의 변화가 생기겠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천지개벽 초에는 홍수가 범람하여 물이 산까지 차고 구릉 위로 올라와 소라나 작을 돌들이 산의 돌 사이에 붙게 되었는데, 물이 다 빠지고는 구릉과 계곡이 변하고 바뀌어 지난번에 높던 것이 씻기고 무너져서 다시 낮아지고, 낮은 것은 흘러오는 모래가 쌓여서 다시 높게 되었기 때문에 물속에 있던 물건이 높은 산의 토석(土石) 속에 있게 된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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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김안로(金安老:1481~1537)가 쓴 야담집인 [용천담적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보시면 첫 문단은 김안로 자신의 관점과 선배선비의 말, 그 다음의 전체 내용은 모두 '소옹邵雍'이라는 사람의 이론을 인용한 것입니다.


중국 공성(共城)이란 곳에서 태어난 소옹 (1011~ 1077년)은 11세기, 즉 북송대 (우리는 고려대)의 중국 철학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록보다 약 300-400년전의 인물이죠. 영문으로는 Shao Yong 혹은 Yung이라고 읽는 철학자로 소강절(邵康節) 또는 소요부(邵堯夫)라고도 합니다.

한국브리태니커를 살펴보면 이 분의 철학을 꽤 자세히 알려줍니다.


성리학의 이상주의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數)에 대한 그의 생각은 18세기 유럽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2진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본래 도가(道家)였던 그는 여러 번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마다하고 허난 교외의 초라한 은둔처에서 친구들과의 교유와 명상으로 세월을 보냈다. 유교의 경전이며 점치는 데에도 이용되는 〈역경 易經〉을 공부하다가 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역경〉을 연구하면서 수가 모든 존재의 기본이라는 상수학(象數學) 이론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숫자로 분류하는 법을 알면 모든 존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2 또는 5라는 숫자를 선호하던 이전의 학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열쇠는 '4'라는 숫자라고 믿었다. 따라서 우주는 4개 부분(해·달·별·황대), 몸은 4개의 감각기관(눈·코·귀·입), 지구는 4가지 물질(물·불·흙·돌)로 되어 있으며 같은 이치로 모든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4가지, 행동의 선택 여지도 4가지라고 주장했다.


비록 이런 복잡한 체계가 유교의 근본과는 거리가 있고 중국 철학의 발전에도 별로 기여하지 못했으나, 중요한 점은 그 체계의 기본이 되는 사상, 즉 '모든 존재하는 것의 본원(本源)에는 통일성이 존재하며 그것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만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통일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원리는 우주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그의 사상은 성리학파 이상론의 기본이 되었다. 그는 또 역사란 반복되는 주기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는 불교사상을 유교철학에 도입했다. 불교에서 겁(劫)이라고 하는 주기를 그는 원(元)이라고 부르고 그 순환주기도 원래의 천문학적 기간을 줄여서 12만 9,600년이라고 했다. 이 사상은 나중에 모든 성리학파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12세기 송(宋)나라에 들어서는 주희(朱熹)에 의해 관학(官學) 이론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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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철학은 꽤 흥미로운데 동양(아시아)쪽 철학자들이 보통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세계적 철학을 전개한 데 비해, 이분은 물론 그런 경향도 있지만 서양철학자들의 특징인 세계의 근본적 (관념적) 근본원인에 대한 탐구를 전개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문단에 나오는 라이프니치는 17세기 유명철학자로 반데카르트주의자였으며 미분-적분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분은 모든 존재의 보편적 원인개념을 파악, 모든 추론을 사고의 대수학으로 귀결시키는 이론을 제시하려 애썼는데 (벌써 비슷하죠?), 이 라이프니치가 1679년에 완성한 것이 2진법체계입니다. 


그럼 2진법체계가 이 '소옹'의 이론과 어떻게 연관되느냐. 바로 이렇게 됩니다. 소옹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상계(現象界)의 구조는 결국 음양(陰陽)의 대대(對待)요, 그와 같이 되어 있는 궁극의 자기 원인은 1기(一氣)이며, 천지의 ‘중(中)’이며 1동1정(一動一靜)의 ‘간(間)’이다.


1동 1정이란 것은 하나는 멈추어있고, 하나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음양의 대대 즉, 음양의 대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상계의 기초체계인데, '운동'하는 하나와 '정지'된 하나의 대비를 1과 0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이진법이 됩니다. 이 이진법의 여러 양태를 조합하면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기초연산인 비트연산이 탄생합니다.


4가지 기본 물질론을 포함하는 숫자 4에 대한 관념론과 성리학의 이기론중 리(성)과 맞닿아 있는 듯한 본성통일론, 그리고 그것을 체득할 수 있는 소수엘리트정치론으로 확장가능한 주장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남긴 양반인데, 위의 이야기와 직결되는 부분은 바로 '불교의 겁 (즉 역사 순환론)'을 유교에 수용 '원'이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서, 모든 것의 역사는 반복적으로 되풀이 된다 (주기적으로 순환된다)라는 이론을 전개합니다.


바로 소옹의 철학중 이 부분을 '산에 있는 조개껍질'과 '물에 마모된 작은 돌'을 보며 [용천담적기]의 김안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약 13만년전 최최의 천지개벽 후 다시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이때 "큰 기운이 한꺼번에 불어닥쳐서 천지간을 한없이 크게 흔들자, 가볍고 깨끗하여 위로 올라갔던 것은 탁(濁)해져서 내려 앉고, 엉키고 메워서 내려갔던 것은 터져서 새어나왔다. 산과 냇물이 솟아나고 메워지고, 사람과 물건은 모두 멸하고 말았다." 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마치 현대에 우리가 배우는 지구의 역사를 짧게 설명하는 듯 합니다 (물론 이는 천지가 뒤바뀌는 것을 급격하게 설명하고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특히 관심이 가는 구절은 다음부분입니다. 

조금이라도 응결되어 녹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능히 둥글거나 모난 대로 틀에 맞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것이 모양이 매우 조잡하지만 진흙이 익지 않으면 (한두개는) 이그러지고 찌그러져 그릇이 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천지의 조물(造物)에 있어서 어찌 한 개의 소라나 하나의 작은 돌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고서야 합하고 흩어지고 녹이고 붓고 열고 닫혀져 천지 형상의 변화가 생기겠는가. 


이것은 마치 백만년당 수십회에서 수백회 (그렇다면 소옹의 '13만년주기론'에 한두번 정도가 되겠죠)꼴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로 인해 진화의 이유가 되는 '유전자 중복'을 보는 듯 합니다. 마지막구절에서는 동아시아에서도 흔히 존재하던 '대홍수설' (우리에게도 백두산 대홍수설화등 많은 대홍수설화가 전하죠)을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서 설명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천지개벽 초에는 홍수가 범람하여 물이 산까지 차고 구릉 위로 올라와 소라나 작을 돌들이 산의 돌 사이에 붙게 되었는데, 물이 다 빠지고는 구릉과 계곡이 변하고 바뀌어 지난번에 높던 것이 씻기고 무너져서 다시 낮아지고, 낮은 것은 흘러오는 모래가 쌓여서 다시 높게 되었기 때문에 물속에 있던 물건이 높은 산의 토석(土石) 속에 있게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룡과 같은 지금 없는 동물의 화석은 약 13만년전의 천지개벽이전의 동물들이며 (그중 멸종한 것이고), 이중 어떤 '변이'가 있는 것은 순환주기적으로 (적어도 약 13만년마다) 일어나는 돌연변이격 (찌그러진 그릇이 발생하듯)인 변이이며, 현재 (11세기, 혹은 김안로가 보기엔 16세기초)의 산위의 수중생물들은 바로 전대의 (즉 당시에서 13만년전) 최후의 천지개벽때 일어난 대홍수로 생긴 결과물이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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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학적 성찰을 전개한 11세기의 소옹이나, 그것을 자신의 '발견'과 연계, 곰곰히 생각하며 인용한 15세기말-16세기초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가인 김안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저냥 '생활'에 묻혀 관념적 성찰을 게을리하고 자기수양이나 하며 지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김안로는 1519년 기묘사화등과 관련되는 정치적으로 야망과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지는 등 덕망이 안 좋은 인물이지만 이런 면모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 저작자체가 이 일로 유배를 가서 쓴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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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09 21: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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