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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봄 다음에 겨울이 오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이런 순서가 곧 순리(順理)이다. 따뜻한 봄이 온 것은 추운 겨울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었던 사람에게 봄은 더 절실하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꽃피는 나무이다.”(황지우,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이 시의 생명력은 ‘저절로’ 찾아오는 봄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봄의 활력에서 나온다. 자신의 온 몸으로 겨울을 밀어내야 꽃 피는 봄을 맞을 수 있다. 봄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는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시평에서) 

 



황지우(黃芝雨, 1952 ~ )는 시인이다. 1952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난 황지우는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후 서강대 대학원 철학 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 박사 과정을 거쳐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근무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후 ‘문학과 지성’에 시를 발표, 등단했으며 제3회 김수영문학상, 제36회 현대문학상, 제1회 백석문학상, 제7회 대산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섬세한 감각, 아름다운 서정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5), ‘게 눈속의 연꽃’(199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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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07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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