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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기원전 558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2천5백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귀한 옥을 얻어서 당시 높은 벼슬을 하고 있던 자한(子罕)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저는 옥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전문가에게 이 옥을 보였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옥이 참으로 진귀한 보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께 삼가 바치고자 합니다.”

 

자한은 그 옥을 받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이 옥을 천하의 보배로 여기는 사람이지만, 나는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을 으뜸가는 보배로 여기는 사람이요. 만약 그대가 그 옥을 내게 주고 내가 그걸 받는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이 각각 가장 큰 보배로 여기는 걸 잃어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소? 사리가 이러한 즉 각자가 자기의 보배를 그냥 간직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편(襄公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한이 선물(실제로는 분명한 뇌물)을 거절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들어지다! 거절의 논리 또한 정연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철학이 배어난다.

 

우리는 사람의 행동이나 세상 유형무형의 재화에 대해 가치를 매긴다. 좋은 물건, 나쁜 물건이 있듯이 훌륭한 행동, 나쁜 행동이 있다. 우러러 보는 대상이 있고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대상이 있다. 많은 돈, 높은 지위, 막강한 권한, 호사스러운 혜택, 안락함, 건강 등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려보고 싶어 하는 것들, 즉 보통 사람들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어느 사회나, 개인은 건전한 가치 기준을 확립하여 그릇된 행동을 하지 말고 옳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교육한다. 사소한 부정적 습관은 물론이고 범죄처럼 크게 잘못된(악한) 행동도 대체로 그릇된 가치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청렴결백, 공명정대, 열린 태도, 단호함 등은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대체로 추상적, 거시적, 무형적인 것보다 가시적, 즉시적, 유형적인 것에 약하다. 눈앞의 부정이나 악의 유혹에 오히려 더 쉽게 흔들린다.

 

국회의원,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들, 여러 사회 기관의 중책을 맡은 사람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중추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수시로 밀려오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이런 사람들의 사리 분별력이나 가치 판단 능력이 시원치 않을 경우 그 폐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요즘 자고 나면 우리나라 엘리트층의 비리, 부정의 행태가 각종 언론 매체를 빼곡하게 채운다. 아무리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도 수긍하기 어려운 작태도 적지 않다. 일반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이들의 행태는 ‘가치 기준’ ‘가치관’이란 단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다.

 

정말 가치 있는 것, 인간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일부터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교묘하고 집요한 이런저런 유혹에 동요되지 않도록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유혹이 뻗쳐 올 때 참으로 귀중한 것과 사소한 것,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 보다 선한 것과 보다 나쁜 것을 분별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의연하고 당당한 삶의 길은 이런 가치관의 확립과 실천 말고 달리 있을 수 없으니까.

 

진정 우리가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게 무엇인지, 혹시 어불성설의 가치 기준을 무신경하게 내면화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자. 2천5백년도 더 전에 살았던 자한의 ‘보배’론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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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7 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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