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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한 나라를 대제국으로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는 《제국의 미래》(원제는 “Day of Empire”)에서 ‘관용정신’이라고 대답한다. 관용정신이 과연 존재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했는가에 따라 역사상의 여러 제국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출신 민족이나 인종이 로마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점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숱한 이질적인 민족, 인종,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을 널리 인정하는 데서 위대한 로마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관용정신과 관련짓기는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조선시대에 사용됐던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단어가 문뜩 떠오른다.

 

이 말은 처음에는 주자(朱子)적 유교에 대한 이론을 다르게 해석했던 선비를 비난하는 데 사용됐다. 성리학의 교리를 어지럽히고 주자의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 것이었다. 조선 중엽 이후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그 뜻이 매우 배타적, 폐쇄적으로 확대되었다. 나중에는 유교의 교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 교리를 자신들이 절대시하는 이른바 ‘주자의 방법’에 따라 해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동원되었다. 

 

조선조를 통틀어 훌륭한 선비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여 죽게 한 경우가 그 좋은 예다. 당시 윤휴는 북벌론을 주장하는 개혁적 성향의 ‘남인’파에 속했는데, 송시열 일파(‘서인’파)와의 정치싸움에서 패배하여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아 죽음을 당하고 만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선비로 일컬어지는 송시열의 관용정신이 이 정도였다. ‘관용’이란 말 자체가 부끄러운 극단적 편협성과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참된 힘은 다양한 관점이나 견해와 이질적 요소들이 공존하며 경쟁할 수 있는 토양 위에서 길러진다. 에이미 추아는 역사상의 여러 제국의 경우를 분석했지만, 국가의 경우만 그런 게 아니다. 리더십 역시 여러 의견과 해법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을 때 보다 강력해지고 현실적 문제 해결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역사상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질적 견해나 경쟁적 집단, 심지어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까지 과감히 끌어안는 ‘통 큰’ 포용력, 즉 관용정신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관용정신은 한 개인의 사고와 행동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도 꼭 필요한 요소다. 이질적인 시각, 심지어 대척적인 관점이나 견해로부터 아무런 도전도 받아보지 않고서, 그리고 시련이나 실패를 겪어보지 않고서 참신한 사고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태동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 개인의 인격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려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관자(管子)》의 ‘형세해(形勢解)편’에 나온다. “바다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다가 단지 ‘큰 물’에 그치지 않고 바다(대양)가 될 수 있는 것은 온 세상의 이런저런 물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관용정신이 미흡하다. 위장된 관용이나 포장만 그럴듯한 관용은 없지 않지만 진정한 관용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관용 정신은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으로 비친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길, 실질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기르는 길, 그리고 창의적이고 성숙한 인격체가 되는 길, 이 모두가 관용정신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사회적, 국가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이처럼 중요한 관용정신을 구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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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06 16: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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