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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이자 첨단 정보사회의 시민이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상품이 유통, 거래되고 온갖 광고와 정보,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소비된다. 사회 전체가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축으로 하여 돌아가기 때문에 광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간 심리를 꿰뚫고 있다시피 한 전문가들이 공들여 기획, 제작하는 광고는 단순한 상품 선전에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참으로 은근하고도 집요하다. 사람들은 그런 교묘한 광고의 유혹에 넘어 간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상품을 거의 충동적, 타성적으로 구매하고 소비한다. 물론 사회 구조의 막강한 영향력은 상품 구입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분야의 여론 형성이나 유행 창조에도 어김없이 반영된다. 쓰레기와 다름없는 저질의 정보와 황당한 아이디어가 신뢰할 만한 전문 지식이나 고품질의 정보와 대등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굳이 ‘자본주의’ ‘정보사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원래 ‘동조(conformity)’를 잘 하는 존재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맞추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할 때 흔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는가. 괜히 ‘중뿔나게’ 나섰다가 본전도 찾기 어려운 수가 많으니까 눈치껏 처신하라는 주문이다. 물론 이런 동조의 경향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특히 문화적 요소도 작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문화권에서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권보다 더 높은 동조 경향을 보인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도 비교적 강한 동조 경향을 보이는 편이라고 본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의 고도 산업화에 따르는 대중사회의 사람들을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특유한 인간 유형을 타인지향형(other-directed type)이라고 불렀다. 현대인은 또래집단(peer group)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들의 영향에 따라 대부분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품을 살까 하는 문제부터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그리고 중대한 국가 정책에 대한 판단에 이르기까지 남들의 생각이나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 즉, 사람들은 대체로 평소 다른 사람의 사고와 판단기준, 행동 방향,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말이다. 리스먼은 이런 심리 상태를 ‘레이더’에 비유했다. 마치 레이더가 탐지하는 목표물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듯이 타인지향적 인간의 마음은 항상 남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눈치꾼’이 되어 버릴 때 불안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여럿이 있을 때에도 그 정신세계가 고독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결국 고도 자본주의 사회, 대중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갖는 고독감, 불안감의 가장 큰 원인은 타인지향성에서 온다는 말이다. 유행, 타인의 시선, 군중 심리, 이런 것에 휘둘려 행동할 때 얼마나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고독하고 불안해지겠는가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주체성이란 인간이 뭔가를 실천할 때 드러내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을 말한다. 이런 주체성은 능동성을 본질로 한다. 외부의 어떠한 요소에 끌려서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기 행위의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냉철히 판단,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판단 기준, 유행적 흐름은 한갓 참고자료일 뿐 별로 신뢰할 만한 근거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습관화하고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주체적인 삶, 나의 나 다움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자세 없이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행복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주체성을 실천하고 강화함은 똑같은 현실에서도 보다 행복해지는 삶과 직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선택과 결단이 요구되는 다양한 문제에 부닥칠 때 주체적 자세를 견지하도록 노력하자. 이것이야말로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서는 길이고 내 삶을 보다 안정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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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07 16: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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