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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는 공자가 나이별로 자신의 정신적 경지를 말한 대목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이순(耳順)’이다. 그는 나이 육십이 되자 이런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귀가 순해졌다'는 말이다.

 

물론 이 단어의 속뜻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대단히 현학적인 풀이도 적지 않다. 나는 소박하게 ‘귀에 거슬리지 않다’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결국 공자의 말은 그가 예순 살이 되자 남들이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을 해도 크게 마음 상하지 않더라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칭찬이나 긍정적 평가를 듣고 싶어 하고, 비난이나 비판, 부정적 평가는 듣기 싫어한다. 흔히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고 양약은 입에 쓰다.”고 하면서 남의 비판이나 부정적 의견을 경청하라고 한다. 옳은 말인데, 실제로 비난이나 비판을 접하면 우선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게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인류 역사를 봐도 처음에는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경청하던 현명한 군주나 지도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첨과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지혜로운 충신이나 훌륭한 조언자를 내치고 종국에는 망해버린 사례가 많다. 정치 지도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구의 우정 어린 고언이나 스승의 객관적인 평가를 악의적인 것으로 여기고 외면했다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순’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공자조차 60살이 돼서야 다다른 경지이니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수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도 반드시 ‘악마의 변호인(데블스 애드버캣, devil's advocate)’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의사 결정을 할 때조차 이른바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런 집단사고는 구성원들 사이에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에서 더 자주 저질러진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워낙 강하다 보면 이런 함정에 덜컥 빠지고 만다. 


다른 대안들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억압되어 결국 불합리하거나 비현실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 집단 외부에서 보면 “이게 정말 그 대단한 엘리트들이 모여서 결정한 게 맞나?”라고 의아해 할 정도로 어이없는 결정도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악마의 변호인’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안에 대해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꼭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마의 변호인’이 하는 일은 모두가 찬성할 때 의도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킨다. 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 모색하도록 분위기를 이끈다. 즉, 안일하게 한군데로 금방 쏠리는 분위기에 제동을 걸어 다양한 시각에서 사안을 검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규모가 크거나 권력이 막강한 집단일수록 그 지도자의 측근이나 하위자로서는 지도자의 의견이나 판단에 대해 비판은 물론이고 다소 다른 의견조차 제시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위계성이 중시되는 문화에서는 ‘여간 간이 크지 않고서는’ 그런 용기를 내기가 더더욱 어렵다.

 

이래저래 지도자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지도자에게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 전문가나 집단이 가하는 지극히 합당한 비판이나 지적도 외면당한다. 우선 지도자 자신이 ‘거슬린다’는 정서를 갖고 대하니 타당한 비판과 대안이 지닌 당초의 선의나 합리성은 아예 증발해버리는 셈이다.

 

고위 지도자나 최고 권력자의 의사 결정, 예컨대 어떠한 직위에 누구를 앉히는가 하는 인사 문제나 중요한 정책 판단은 엄청난 영향과 파급효과를 지닌다. 지도자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한 나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뒷걸음질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순’이나 경청은 단지 개인의 인격 수양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지도자, 특히 국가 정치 지도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가는 그가 얼마나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경청하는 자세가 결여된 지도자에게 숱한 엄중한 문제나 엄혹한 상황에서 합당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를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지도자에게 과감한 제안이나 파격적 해법, 이질적인 관점마저 포용하기를 정말로 기대할 수 있을까. 

 

여야를 떠나 요즘 우리나라 최정상급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행태를 볼 때마다 강하게 품게 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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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15 16: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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