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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옛날 정(鄭)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려고 했다. 신발을 사러 가기 전날 밤에 자기 발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모양과 크기를 그려 두었다. 다음 날 그는 시장에서 신발 장수를 만났다. 하지만 깜빡 잊고 전날 밤에 그려 둔 발 그림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걸 그때야 깨닫았다. 그는 신발 장수에게 말했다. “내 발 크기를 그린 그림이 없으니 당장은 신발을 살 수가 없겠군요. 집에 돌아가서 놔두고 온 그림을 가져와야겠소.”

 

그가 서둘러 집에 와서 그림을 가지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장이 파해버려서 결국 신발을 살 수 없었다. 이 일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아니, 왜 당신 발로 직접 신을 신어보지 않았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아, 그거야… 내가 그림이야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자기의 발 모양 그림은 자기의 발을 원형과 기준으로 삼은 게 아닌가. 원형이나 기준이 그림에 밀려난 형국이다.

 

자녀 기르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부모가 자식 교육과 양육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목적은 결국 그 자녀가 올바른 한 개인으로서 자립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식을 위한다는 노력이 종당에는 자식을 망가뜨리는 일로 귀착되는 경우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교육 역시 다르지 않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개인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다양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력과 창의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극성스러운 교육열은 오히려 개인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짓밟도록 기능하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떠한 신념이나 종교를 지키고 믿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보다 인간답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독선이나 맹신에 빠진 나머지 자신과 가정은 물론 소속된 공동체나 사회를 파멸이나 불행으로 이끌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교하고 정연한 논리로 짜인 여러 사상이나 이념도 최종 목적은 더 나은 사회, 즉 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데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사상이나 이념을 맹종하거나 절대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공포 사회를 조성한 경우가 흔했음을 사실로서 증언한다. 

 

과학 기술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목적은 인간의 편리와 건강, 인간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귀한 인간 생명을 과학 기술의 실험도구 정도로 간주하고 살상한 끔찍한 사례로 가득하다.

 

아무리 보편타당한 목적이나 숭고한 가치라도 일단 거기에 함몰되어버리면 해로운 성과를 낳을 수 있고 심지어 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좀 더 깊이 따져보면 수단적 가치밖에 없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 것을 무슨 깊은 목적이 들어있다고 여기고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부정적 사태에 이르고 만다. 한마디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사태, 즉 ‘목적과 수단 사이의 전도(顚倒)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든 사회든 지향하고 있는 바가 올바른 지 부단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성취욕이나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추진 방향 자체에 대한 성찰에 소홀해지기가 쉽다. 또한 이런 성찰의 노력을 경시하다 보면 거의 자동적으로 수단과 목적 관계에 ‘뒤바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기 신발을 사려는 사람이 신발을 자신의 발에 맞춰보지 않고 자기의 발 그림에 맞춰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실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와 비슷한 행태와 부조리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인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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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25 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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