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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40> 완벽을 향해 노력하자
  • 기사등록 2022-08-16 17:06:18
  • 기사수정 2022-08-16 1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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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완벽'(完璧)이라는 낱말이 있다. 일상에서도 완전, 철저, 완전무결과 거의 동의어로 흔하게 쓰인다. 이 단어는 ‘완벽귀조(完璧歸趙)’에서 나왔다.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조(趙)나라 혜문왕이 ‘화씨의 구슬’[‘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대단히 진귀한 벽옥(璧玉)을 얻었다. 이 사실을 안 진(秦)나라 소양왕이 이 보물을 빼앗을 속셈으로 15개의 성과 벽옥을 바꾸자고 조나라에 제안했다. 

 

조의 혜문왕은 진나라 소양왕의 속셈을 간파했지만 그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까딱하다가는 강대국인 진나라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때 혜문왕의 신하인 무현(繆賢)이 자기의 식객으로 있는 인상여(藺相如)가 지혜와 용기를 갖춘 훌륭한 인재이니 그와 대책을 상의해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대책을 묻는 혜문왕에게 인상여가 대답했다. “소신이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겠습니다. 만일 성이 조나라로 들어온다면 구슬을 진나라에 두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소신은 구슬을 완전하게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完璧歸趙).” 

 

인상여는 진나라로 가서 소양왕에게 벽옥을 건네 주었다. 하지만 소양왕은 당초 약속했던 성 15개를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상여는 소양왕에게 벽옥이 천하의 진귀한 보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작은 흠집이 있으니 그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소양왕이 그 말을 듣고 벽옥을 인상여에게 도로 내주었다. 


벽옥을 건네받자 인상여는 그 벽옥을 갖고 기둥 옆으로 가서, 만일 진나라 소양왕이 처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벽옥을 기둥에 던져 박살내 버리고 자신도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겠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소양왕은 벽옥이 손상될까 두려워 마지못해 성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양왕의 진의를 간파한 인상여는 닷새 안에 약속을 지키면 벽옥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몰래 사람을 시켜 벽옥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결국 벽옥은 온전한 상태로 조나라로 되돌아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진나라 소양왕도 세간의 여론을 의식하여 인상여를 그냥 조나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불멸의 역사서, 《사기(史記)》의 ‘인상여열전편(藺相如列傳篇)’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지금 세상은 완벽은 고사하고 불완전 천지, 부실과 결함 투성이로 넘쳐난다. 시도 때도 없이 어불성설의 사태가 도처에서 벌어진다. ‘풍진(風塵) 세상’이란 표현이 참으로 제격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으로 본 것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언행, 인간관계, 사회의 다종다양한 시스템, 여러 분야의 작동 기제와 행태가 대체로 그렇게 비친다. 모든 면에서 ‘완벽’을 향한 노력이 그만큼 절실히 필요하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완벽을 성취함이 수월하지 않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완벽귀조’의 경우에도 인상여가 투철한 사명감, 깊은 지혜(와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두루 갖췄기에 성취할 수 있었다. 완벽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이런 요소들, 즉 사명감, 지혜, 용기 등에서 어느 하나를 웬만큼 구비하는 일조차 녹록치 않음은 분명하다.

 

여러 면에서 불완전한 속성을 지닌 인간에게서 완전무결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간의 역사는 ‘매우 불완전한 상태’ 에서 ‘좀 덜 불완전한 상태’, ‘보다 완전한 상태’ 를 향한 부단한 노력으로 엮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게는 한 개인의 인격수양에서, 크게는 국가적, 세계적 갈등이나 자연 재해의 해결에 이르기까지. 

 

물론 그런 노력이 언제나 성공하거나 또는 직선적 발전이나 참다운 개선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완벽성이나 완전성은 우리 인간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궁극 목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시인 롱펠로우(Henry W. Longfellow)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라네/ 우리의 숙명적인 목적이나 갈 길은./ 다만 오늘보다 더 나아간 우리 자신을/ 내일 또 내일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일 뿐이라네.” (Not enjoyment, and not sorrow,/ Is our destined end or way;/ But to act, that each to-morrow/ Find us farther tha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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