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편가르기 극심, 교양 수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송영오 전 주이탈리아대사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양과 예절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송영오 전 주(駐)이탈리아대사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양과 예절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국가의 품격은 국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국민의 문화 수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시민의식 없이는 품격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국가가 과연 품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최근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송영오 전 주(駐)이탈리아대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나라를 불문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와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이주민에 대한 차별도 심해지고 정상들의 언행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면서다.


송 전 대사는 34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시민사회가 갖춰야 할 교양에 대해 고민해 왔다. 미국과 유럽·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근무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매너를 중시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세계 경제 규모 10위이자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 국력과 달리 문화 수준과 예절 의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송 전 대사의 냉정한 평가다.


2005년 주이탈리아 대사를 끝으로 퇴임한 뒤 국제 시민사회봉사단체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명예회장을 맡은 송 전 대사는 최근 『당신은 교양인입니까』를 펴냈다. 그는 “내로남불이 잦아지고 편 가르기가 극심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처방은 기본을 강조하며교양수준을 높이는 일” 이라고 말했다.


교양의 시작은 예절이라고 강조했다.

“교양인은 예절이 바르고 문화적이며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을 뜻한다. 즉 교양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예절과 매너·에티켓이다. 어른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바르게 행동해야지’라며 지식보다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먼저 가르친다. 전문 지식 습득이나 문화적 경험 축적은 그다음이다. 재벌가 갑질 논란을 봐도 학력이나 경제적 수준이 아무리 월등해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나.”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직접 마주하고 대화할 때는 아무래도 예의를 갖춰 상대를 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인 접촉이 줄면서 예절과 매너가 급속히 실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자 장유유서의 나라로 불려왔는데 요즘은 어른에 대한 예절뿐 아니라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많이 약화된 모습이다. 우리의 예절 규범이 어느새 서양의 에티켓 문화보다 더 뒤처지게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서구에서도 인종차별이 끊이질 않는다.

“맞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화 수준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컨대 미국은 다인종 사회로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나. 유럽도 난민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약자 배려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 우리의 문화도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많이 배우고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외국인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도 적잖다.
“문화 교육이 부족해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때면 그 나라에 가서 주의해야 할 행동이나 제스처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나. 하지만 국내에서 그 나라 시민을 접할 때면 과거에 익혔던 매너는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에 왔으니 무조건 우리 문화를 따르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춰야 한다. 법과 제도·시스템을 국제 수준에 맞추려는 사회적 노력과 달리 일반 시민들의 교양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교양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하다. 서로의 몫을 최대한 챙기려는 긴장 관계 속에서도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예의와 매너는 호감도와 신뢰를 끌어낼 수 있다. 송 전 대사는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는 잦은 대화와 접촉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신뢰와 정직이 뒷받침돼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하는 협상에서도 매너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나.

“과거의 협상 문화는 속임수를 쓰더라도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중요했다. 우리 몫을 가장 많이 챙기는 게 협상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협상으로 당장의 이득은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의 더 큰 잠재적 이득은 놓치기 쉽다. 외교관을 ‘나라가 승인한 거짓말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외교관만큼 진실성에 대해 많이 배우는 직업도 없다. 국가 간 협상에서 진실성·에티켓·신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사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와 맞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두렵지만 (지금은) 두려워할 권리도 없다’며 인간적인 면모와 동시에 한 나라의 리더로서 자국민과 영토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이런 용기와 진정성이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빈곤·환경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도 강조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처럼 글로벌 이슈가 발생하면 국가 뿐 아니라 유엔 등 국제기구와 NGO 등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협력하게 된다. 그런 만큼 우리 국민도 이젠 세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때다. 사회적 의제는 결코 추상적인 게 아니다. 당장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요즘 많은 시민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 동참하고 있는데 이 또한 환경오염을 막으려는 작은 노력 아니겠나.”
(중앙선데이 2022. 08. 06)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2-08-11 16:15:09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
 많이 본 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