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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BC 540?~BC 480?)가 한 말이다. 

 

바로 지금 어느 강물에 발을 담갔다고 해 보자. 그리고 잠시 그 강물에서 발을 뺐다가 조금 후에 다시 발을 담근다고 해 보자. 엄밀히 말하면, 나중에 발을 담글 때의 그 강물은 좀 전에 발을 담갔던 그 강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강물이다. 좀 전의 그 강물은 이미 저만큼 흘러가버렸을 테니까. 

 

한마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 불변하거나 불멸하는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언뜻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우주의 모든 사물이 늘 돌고 변하여 어떤 한 모양으로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온 우주에 영원하고 절대 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틀린다. 그 생각은 세계를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 즉 일종의 착각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착각이 인간을 불행으로 이끈다는 데 있다. 착각이 일어나는 상태, 실상(reality)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는 말하자면 캄캄해서 뭐가뭔지 분간하지 못하는 정황에 비유될 수 있다. 이른바 ‘무명(無明)’의 상태다. 불교는 이런 무명 상태에서 쓸데없는 집착과 번뇌가 생겨나고 끝내 인간은 불행에 빠지게 된다고 설파한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서, 번뇌와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무명, 즉 착각에서 벗어나서 슬기롭게 살아야 한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성서』 ‘전도서’의 표현을 빌리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행동을 한다는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사회와 국가의 지도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 이하의 행태들이 방송과 신문을 통해 심심찮게 보도된다. 이들은 하나같이 비상한 두뇌를 가졌고 젊은 나이에 어렵고 까다로운 국가시험에 합격하는가 하면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거나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은 머리는 비범했지만 세상과 가치를 판단하는 데는 ‘무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여러 면에서 착각에 빠진다. 


국가가 일시적으로 부여한 권한을 마치 영원한 것인 양 잘못 인식한다. 공적 권력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해도 된다고 오판하는 것이다. 사적인 친분관계와 공적인 영역을 혼동하기도 한다. 단편적 지식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복잡 미묘한 사회 국가 문제의 해법으로서 경솔하게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드물지 않다. 이런 여러 착각은 결국 자신과 사회, 나라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이들의 착각을 통해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사실은 머리 좋은 것과 슬기로운 것은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머리가 좋을수록 진정한 지혜로움과는 멀어진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변하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젊음이나 아름다움, 절대 권력이나 천문학적인 재화(財貨) 역시 다르지 않다. 이런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집착함은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명백한 명제를 온전히 내면화 하여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 각자(覺者, 깨달은 사람) 또는 현자(賢者)라고 불릴 만하다. 그들은 사물과 세계의 실상을 완벽하게 파악한 사람이다. 눈곱만큼도 착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 어떤 사태나 유혹도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할 것이다. 그 정신세계가 말 그대로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지 않겠는가.

 

물론 보통 사람에게 이런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요구함은 지나치다. 하지만, 항상은 아닐지라도 가끔 멈추어 서서 세상과 사물을 이런 냉철한 관점에서 응시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우선 각 개인의 귀중한 삶이 착각의 늪에 빠져 불행해지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발생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적 행동이 보다 인간적이고 고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노력들이 지속될 때 우리 사회와 내일이 보다 인간미 넘치고 성숙한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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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25 15: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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