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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다양한 사고, 끔찍한 자연 재해도 숱하게 일어난다. 수시로 방송과 신문은 수십 억 인간이 사는 지구의 나날이 안타까운 사건이나 참혹한 비극으로 채워짐을 상기 시킨다.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미담이나 반가운 소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밝은 뉴스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참으로 드물다.

 

무슨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가능한 한 적었으면 하는 게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집이나 살림 도구가 망가지고 가축이 희생되는 일도 물론 안타깝다. 이런 일이 살기 어렵고 가난한 지역에서 일어나면 더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극한적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사람 목숨만큼 귀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재난이나 사고가 터지면 우선 인명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골든타임(golden time)’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생겼을 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인명 구조와 관련하여 상황이 처음 발생한 직후의, 말 그대로 ‘금 쪽 같은 시간’ 을 가리킨다. 사고 발생 초기의 1~2시간에 해당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황금 시간대’ 정도로 옮겨질 이 골든 타임에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인명을 구조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바꿔 말하면, 이 시간대를 놓치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도 결국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골든 타임은 심폐 소생술과 관련해서도 쓰인다. 보통사람의 심장이 언제 멈출지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심장 정지가 발생한 후 4~5분이 경과하면, 뇌가 비가역적 손상(주위 환경 변화나 대응, 조치로써는 되돌리기 어려운 손상)을 입는다. 쉽게 말하면, 아무런 조치 없이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뇌가 망가져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심장 정지를 목격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심장 정지가 발생한 사람을 정상 상태로 소생시킬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절대로 골든 타임, 즉 최초의 4~5분의 황금 시간대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요즘 이 ‘골든 타임’ 개념이 사회적, 국가적 문제 해결 등에도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 또는 국가의 크고 작은 정책 결정, 집행에 이르기까지 시의 적절성(timeliness)은 가장 깊이 고려해야 할 요소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골든타임’은 최적의 시의성을 뜻하는 것이다. 창의적 발상이나 훌륭한 정책도 때를 놓치면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굳이 커다란 사건, 사고가 아니라도 집단이나 조직, 국가의 경우, 의사 결정이나 추진 과정에서 골든타임은 깊이 고려해야 할 사항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골든타임’은 한 개인의 인생 여정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떠한 개인의 인생에서도 ‘골든타임’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일생으로 말하면, 유년기에서 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는 각 시기나 특정 시점이 여느 시기나 시점과 똑같은 가치와 비중을 지닌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평생의 성패를 좌우할 능력과 소양을 기르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생기 발랄한 젊은 시절이야말로 인생의 ‘골든 타임’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젊은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은 일종의 상식에 가깝다. 삶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나중에 누리고 싶은 여러 유형 무형의 좋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고, 젊은 시절은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본다면, ‘젊은 시절=골든타임’이라는 등식은 맞는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 인간의 어느 한 시기는 결코 다른 시기를 위한 과정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의 특정 시기가 다른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견해에 일단 동의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성인(聖人) 아닌 보통 사람들로서는 인생의 ‘골든타임’을 정확히 파악하여 한눈팔지 않고 나아가는 일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철들자 망령 난다’는 속담은 인생에 관해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골든 타임’을 뒤늦게 깨닫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의 행적이고 보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하다. 최선을 놓쳤다고 한숨과 한탄으로 지새우는 것보다는, 늦었지만(‘골든 타임’을 놓쳤지만) 차선의 성과를 향해 전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단 차선을 목표로 정하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이 골든타임으로 승격된다는 것이다. 골든타임이 아닌 각 순간들이 모두 ‘(가장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더욱 나쁜 결과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 즉 ‘제2의 골든타임’으로 전환된다는 말이다. 최선 아닌 차선을 기준으로 설정한다면 매 순간, 모든 시점이 골든타임으로 탈바꿈한다.

 

삶은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다. 바람직한 것을 이루기 위한 선한 시도는 물론이고 이런저런 잘못과 실수들로 점철된 여러 순간이 모여진 것에 불과하다. 매 순간은 다른 순간을 위한 과정으로서만 의미를 갖지 않는다. 각각 고유한 무게와 가치를 지닌다. ‘골든 타임’을 놓쳐 보내고 적지 않은 후회 속에서 삶을 사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인생의 남아 있는 나날에 상관없이 아직도 ‘제2의 골든 타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격려가 아닐 수 없다.

 

내 앞에 전개되는 매 순간이 ‘잠재적 골든 타임’임을 가슴 깊이 새기자. 그리고 내 모든 열정과 지혜를 모아 차선의 성과나마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럴 때 내 삶은 휘황찬란한 황금 빛은 아닐지언정 은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은빛 광휘로 빛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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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04 16: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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